지난 1991년 1월 30일, 김부남이라는 30대 여성이 50대 남성을 식칼로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김부남 사건’이라 보도되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김 씨는 1심 공판의 마지막 날,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라는 최후 진술을 했고 이에 한국 사회는 들썩였다. 그녀는 왜 그 남자를 죽였는가?

살해 사건이 발생하기 21년 전, 당시 9세였던 김 씨는 이웃집 아저씨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시간이 흘러 김 씨는 성인이 됐고 결혼 후 한 아이의 어머니가 됐다. 그러나 그녀는 유년시절 겪게 된 끔찍한 성폭력의 후유증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이는 결혼생활에 심각한 장애물로 작용했다. 김 씨가 성폭행당한 기억 때문인지 부부관계가 괴롭게만 느껴졌었고, 이로 인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재판에서 진술한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결국 김 씨는 자신이 겪는 모든 불행의 원인이 어린 시절에 겪게 된 성폭행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그리고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를 처벌하고자 결심한다. 그러나 성폭행 사건 발생 이후 20여년이 지나 범행 사실을 입증할 증거들이 소멸됐으며, 성폭행 범죄의 공소시효 또한 지나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상태였다. 김 씨는 스스로 그 가해자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재판부은 자신을 성폭행한 이를 죽인 혐의로 김 씨에게 “징역 2년6월, 집행유예 3년, 치료감호에 처한다”라는 판결을 내렸다. 성폭행에 대한 보복으로 피의자를 살해한 김 씨에게 재판부은 왜 사형이나 무기징역 등이 아닌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 그 이유는 재판부가 김 씨가 성폭행 당한 경험으로 인해 정신분열증이 발생했으며, 20여 년간 당시의 충격으로 일생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려 왔다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김 씨의 사건을 계기로 ‘쉬쉬’하고 넘어가던 성폭력 문제가 사회의 전반으로 드러났으며, 사람들에게 성폭행은 한 여성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정도로 끔찍한 범죄라는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즉,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꾸준히 제기돼 오던 ‘성폭행’의 심각성을 많은 이에게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여성계에서는 김부남 사건과 잇달아 발생한 김보은ㆍ김진관 사건(1992년)이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는 여론을 형성했다고 본다. 이러한 여론과 여성계의 노력이 더해져 지난 1994년, 성폭력 처벌과 피해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성폭력특별법 제정됐다.

최근 연이어 보도되는 유아성폭행사건 뉴스는 어린 자녀를 가진 부모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그리고 저녁 늦은 귀갓길에 강도ㆍ성폭행을 당하는 여성들의 소식은 여성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까지도 불안하게 한다. ‘김부남 사건’이 발생했던 때와 비교 하면 현재 성폭행 사건의 법적 처리 절차는 한결 체계화 됐고 조사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사건 조사가 행해진다. 또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향후 치료와 조치를 등을 맡는 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같은 전문적 기관도 설립됐다.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 그리고 사회가 협력해 성폭행으로 삶을 통째로 잃어버린 피해자와 제2의 ‘김부남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도움주신 분 = 김용화(법학 전공) 교수

한국여성사건사 코너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발생한 여성계의 영향력 있는 사건을 소개할 목적으로 개설됐습니다. 이 코너는 이번학기에 2~3차례 격주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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