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우리나라는 근대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여성은 어떤 여성운동을 펼쳤을까? 여성교육의 일환으로 순헌황귀비는 1906년 우리학교의 전신인 명신여학교를 설립한다. 여성교육기관의 건립 그리고 여권의 신장을 위해 애썼던 100여전의 여성운동. 현대여성운동이 존재할 수 있도록 그 기초를 마련해준 근대여성운동을 되짚어보자.

개화기에 민중의식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했던 독립신문의 1898년 1월 4일자 논설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다. “하나님도 세계 인생을 낳으실 때에 사내나 여편네나 사람은 다 한가지라 여자도 남자의 학문을 교육받고 여자도 남자의 동등권을 가져 인생에 당한 사업을 하난 것이 당연한 도리어 날 동양풍속은 어찌하여 여자가 남자에게 압제만 받고 죽은 목숨처럼 지내는지(후략)”

이 논설에는 유교적ㆍ가부장적 사회 구조속에서 사회활동에 제한을 받았던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그때의 시대상이 반영돼 있다. 그 시기 활발히 전개되던 애국계몽운동의 영향을 받아 여성들의 의식을 일깨우기 위한 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고 순성회ㆍ찬양회ㆍ여자교육회와 같은 여성단체가 설립된다. 당시 국한문혼용체로 발행되던 신문과 달리 순 한글로 발행된 제국신문(1898~1910)은 부녀자들에게 널리 읽혀지며 여성들이 국채보상운동과 같은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여성계몽운동은 이후 여성교육기관의 건립운동으로 이어진다. 근대의 사립학교는 주로 개신교 선교사들과 계몽운동을 전개한 민족 지도자들 주도로 세워진다. 지금의 이화여자대학교의 전신인 이화학당(1886)은 선교사 스크랜튼부인에 의해 설립됐다. 기독교계 학교에서는 신학문 뿐만 아니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을 가르쳤다. 또 고종의 비인 순헌황귀비는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느껴 민족의 결속을 지향하는 명신여학교(1906)와 서구식 교육을 실시하는 진명여학교(1906)를 설립했다.

 명신여학교는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와 숙명여자전문학교를 거쳐 지금의 숙명여자대학으로 성장한다. 1910년 일제에 국권을 강탈당한 이후 여성운동은 계몽과 함께 항일운동을 전개하는 민족수호적 성향을 띈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의 전교생 200명은 3.1운동(1919)에 참여했고 일제의 식민통치에 반발해 동맹휴학을 하는 등 일본의 제국주의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일제 강점기에 여성의 사회ㆍ경제적 지위는 격하되며 여권은 점차 위협받게 된다. 여성의 재산관리권과 법률행위는 존중받지 못하고 남편 또는 남성 친족들에게 의존하는 방식을 취하게끔 한다. 또한 이 시기 일제는 사회적 참여에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을 사회활동에 참여시킨다는 명목하에 여성인력을 정책적으로 군수물자생산에 동원한다.

또 식민통치에 순응하는 여성, 가부장적 체제에 동조하는 여성을 길러내기 위해 여성에게 ‘현모양처’와 같은 여성상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의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노동현장에서 낮은 임금을 지불하는 직접적인 차별도 가했다. 이에 여성운동은 계몽운동과 교육운동을 넘어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운동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운동 중에서 근우회(1927)와 조선여자교육회(1920)와 같은 단체들의 노력이 두드러진다. 근우회의 결성은 여성계의 좌우합작을 이뤄내고 체계적인 조직망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사학계에서 근대의 여성운동을 한 단계 도약한 계기라 평가받는다. 강혜경(역사문화학 전공)교수는 “일제말기에 친일단체로 많은 여성단체들이 변모하는 것과는 달리 근우회는 민족적인 성향이 강했다”라고 근우회의 의의를 설명했다. 근우회는 강연회ㆍ토론회ㆍ야학을 설치하는 활동을 펼치며 여성의 의식을 고취하려 애썼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서며 민족노선의 붕괴와 함께 근우회의 결속력도 흐려진다.

근우회와 더불어 대표적인 여성교육단체인 조선여자교육회(1922년)에서도 강연회ㆍ토론회를 개최하는 여성운동을 실시한다. 이 단체는 여러 일간지와 <개벽><신여성> 등의 잡지에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글을 게재하며 여성운동을 지원했다. 조선여자교육회(1920)는 이후 조선여자교육협회(1922)로 발전했고 후에 여성운동가인 차미리사의 주도로 지금의 덕성여자대학교의 전신인 근화학원(1923)을 설립했다.

 여성의 의식개혁 그리고 여성전문교육기관의 건립으로 결실을 맺은 근대여성운동의 흐름은 해방이후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여성운동은 70년대와 80년대 산업화과정을 거치며 여성근로자 문제와 연관돼 사회적으로 논의됐다. 유교와 가부장적 시대에 갇혀 살았던 여성을 사회로 이끌어낸 역사속 근대여성운동을 살펴보며, 현대여성운동의 목적과 방향을 환기시켜보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사진출처 = '근대여성'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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