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박찬욱, 봉준호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감독들은 세계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얼마 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박쥐’와 곧 개봉할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이미 영화제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거장 감독들에게도 연습과정은 있었다. 다른 예술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여러 습작을 거쳐 지금의 대작들을 탄생시켰다. 영화감독들에게 습작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소설가 공지영은 한 인터뷰에서 “옷 잘 입는 사람이 옷을 잘 입을 수 있는 이유는 너무나 많이 옷을 사서 버려봤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렇듯 유명 예술인들은 항상 습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렇게 인정받기까지 어떤 작품들이 있었고, 특징은 무엇인지 그들의 시작이 궁금해진다.


독특한 스토리의 복수극으로 단숨에 스타감독 대열에 오른 박찬욱 감독. 92년 남녀의 이야기를 제 3자가 회상하는 식의 내용인 ‘달은..해가 꾸는 꿈'으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당시 한국 영화계에는 낯설었던 B급 영화 덕에 박 감독은 화제가 됐지만 상업적인 면에선 실패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영화평론가로 활동하다 97년 가난한 삼류 악사, 자식 찾는 여자, 조직의 배신자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코미디영화 ‘3인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관계자들에게서 “열악한 제작 환경으로 감독 경력 최악의 실패작이 탄생"이라는 평과 함께 외면당했으며, 박 감독 스스로도 외면하고 싶은 영화라고 평가했다. 박 감독은 데뷔작과 후속작의 참담한 실패가 이어지면서 연출 기회의 감소, 작품의 기획 취소, 각본까지 쓴 영화를 빼앗기는 등의 실연도 겪었다.

하지만 ‘공동경비구역 JSA’가 큰 흥행을 거두면서 대중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했고, 15년 감금생활과 피의자 추적이라는 복수극 ‘올드보이’로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너나 잘하세요”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킨 여성의 복수극 ‘친절한 금자씨’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젊은 사자상을 수상했다.

박 감독의 기법과 소재들을 살펴보자면, 우선 슈퍼35mm*라는 기법을 국내최초로 시도했다. 또한 그는 소도구를 이용한 무대에서의 등장인물 배치, 동작·도구·조명 등을 통해 절묘한 연출 및 장면의 길이를 짧게 만들어 내는 기술이 탁월하다. 이 부분은 영화평론가들도 박 감독 최대의 장점으로 꼽는 부분이다. 그의 연출력은 복수 혹은 폭력이라는 극적인 내용과 만났을 때 빛을 발한다. 대표작인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주인공들이 분단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폭력을 경험하게 되고,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자의와 상관없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다루고 있다. 이렇듯 그의 영화에는 주로 죄, 구원, 폭력, 복수라는 소재가 뒤섞여 있다.

한편,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으로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라는 별명을 가진 젊은 국민감독 봉준호의 습작시절은 다른 감독들에 비해 찬란했다. 사실 봉 감독은 93년 6mm단편 ‘백색인'으로 정식 데뷔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94년 세 개의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은 단편영화 ‘지리멸렬’ 덕분이었다. 아침운동 중 남의 집 우유를 습관적으로 훔쳐 먹는 신문사 논설위원, 만취해 길가에서 용변을 누다 경비원에게 들키는 엘리트검사, 도색잡지를 즐겨보는 교수까지 세 사람이 TV에 출연하여 사회문제에 관한 대담을 나누는 내용인 ‘지리멸렬'은 사회모습을 재치있게 풍자했다는 평을 들으며 영화계에 주목할 신인감독으로 인정받았다. 이 후 16mm 단편영화 ‘프레임 속의 기억’은 벤쿠버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고, 장편 데뷔작이었던 ‘플란다스의 개’로 뮌헨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관객들의 이목을 끈 봉 감독은 희대의 사건인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한 ‘살인의 추억’과 한강에 사는 미확인 생물을 창조해 ‘괴물’을 만들어 내며 국민감독으로 자리 잡게 됐다.

박 감독이 어두운 분위기의 소재들을 자주 이용하는 반면에 봉 감독은 평온한 일상을 비트는 소재들을 이용한다. ‘플란다스의 개’는 소소하고 개인적인 에피소드로 출발해 자질구레한 일상과 만화적 판타지가, ‘살인의 추억’에서는 80년대 한국 농촌과 미국적 스릴러장르가 융합됐다. 해석력이나 표현력이 뛰어난 감독이 넘치지만, 소재나 캐릭터 구성에 있어서 특출난 시각과 관찰력을 가진 감독은 그리 흔치 않은데 그 중 한명이 바로 봉준호이다. 봉 감독의 ‘흔들리는 도쿄’에 출연한 가가와 데루유키가 봉 감독을 ‘크레인 끝에 현미경이 달린 50m짜리 커다란 크레인을 운전하는 기사’라고 비유한 바 있듯이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봉테일’이다.

세상에 많은 영화감독들은 주로 장르, 기법들의 기술적 요소에 치중해 흥행 위주의 영화를 만들곤 한다. 그 속에서도 이 두 명의 감독은 흥행성과 함께 자신만의 자유로운 형식을 유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할리우드 영화 대세론과 충무로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하나의 보석들을 만들어내는 코리아 표 거장 감독들. 우리는 그들의 머릿속에 숨겨진 독특한 연출과 상상력을 가늠할 수 없기에 더욱 그들을 기다리게 된다. 이번 5월은 그들의 영화를 즐길 수 있어서 더욱 즐거운 달이 될 것이다.

 

*슈퍼35mm란? 영화화면 사이즈를 가장 영화적이라고 하는 2.35:1의 비율로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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