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과거 동양의 여성정치지도자들은 이른바 ‘정치 명문가’ 출신이고 대학원을 마친 지식수준이 높은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범국민 차원의 높은 지지로 권좌에 올랐지만 정책정당을 이끌 만큼 이념 지향적이지 않았고 정치권 내부의 지지 세력이 미약해 궁극에는 불행하게 권좌를 떠나거나 단임에 그쳤다. 반면 과거 서양의 여성정치인들은 이른 바 풀뿌리 정치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시민단체나 정당 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정책적 이념으로 무장하고 당당히 남성들과 경쟁을 통해 국가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학력수준도 동양지도자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편이었지만 연임을 하며 국가를 이끌거나 지도자의 위치에서 물러난 후에도 여전히 정치활동을 지속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개방화로 동서양 가치의 편차가 축소되고 이념의 갈등구도가 와해되면서 국가지도자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수준과 지향 방향이 유사해지고 있다. EU를 리드하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최근 부상하는 유럽의 여성 최고지도자들은 매우 높은 전문지식을 지닌 지식인들이다. 중산층 출신이며 가정을 이끄는 주부들로써 소통의 가치와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부드럽지만 섬세한 리더십으로 조용하고 무난하게 국정을 이끈다.


최고지도자는 아니지만 힐러리 국무장관은 최강국 미국의 외교를 이끈다. 법을 전공한 힐러리는 다른 외교적 대상을 상대로 같은 수사를 반복하지 않는다. 중국의 후진타오를 만나 느닷없이 미국의 국채 환매를 중지할 것을 요청하면서 미국경제 위기를 최소화하는 그 성공적 소통은 남성인 오바마가 아니라 여성인 힐러리이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힐러리는 ‘불행’하게도 예외주의적 가치를 바탕으로 통제적 경찰국가의 이익을 대변한다. 다행이다.


중문학을 전공한 제자가 인도연구를, 영문학을 전공한 제자가 국제 ICT 연구를, 독문학을 전공한 제자가 올림픽 공부에 몰두하기 위해 유학을 떠난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제자가 국제식량문제를 공부하기 위해 논문을 쓰고 국제기구 진출을 모색한다. 어학연수를 간 줄 알았던 학부의 제자들은 방학마다 심심치 않게 ‘선생님 저 세렝게티에요. 다친 동물들 조금만 더 돌보다 갈게요!’ ‘카이로의 아동노동이 정말 심각해요. 어제 12명 보호소로 탈출시켰어요! 잘했지요?’라는 장거리 전화를 수신자 부담으로 걸곤 한다. 필자는 확신한다. 관심이 가는 지식을 추구하며 지구를 걱정하는 제자들이 ‘예외주의’의 가치를 ‘훌륭’하게 전도하는 힐러리 후배들보다 훨씬 행복하고 현명한 세계적 여성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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