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소녀 시절, 수 많은 조선의 여인들이 일본군의 위안부로 강제 징용됐다. 우리가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선 것은 과연 몇 번이나 될까? 최근 개봉된 다큐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는다’ 는 위안부 피해자인 송신도 할머니와 일본 정부에 대한 할머니의 소송을 10년 동안 지원해준 사람들의 재판 과정을 그리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10년 동안 할머니를 도운 이들이 바로 일본인이라는 사실이다.

지옥 같은 위안부 시절 -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영화는 송신도 할머니의 위안부 시절 이야기와 함께 시작한다. 어리고 여린 16살, 송신도 할머니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살고 싶지 않아 혼인 첫날밤에 가출을 했다. 그 후, 전쟁터에 나가면 여자도 혼자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고 그 감언이설에 속은 할머니는 중국까지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로 강제 동원됐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던 시절. 1945년, 전쟁이 끝난 그날이 올 때까지 할머니는 7년 동안 매일같이 일본 군인의 성 노리개가 돼야 했다. 반항하는 날에는 여지없이 폭행과 고문 행해졌다. 할머니의 등에 있는 흉측한 칼자국과 고막이 터져 난청이 돼버린 귀가 잔인했던 그날을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재일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지원 모임)의 사람들이 모여 활동을 시작한 것은 종전 후 40여년이 흐른 1992년부터였다. 일본에서 네 개의 시민단체가 위안부 피해자인 할머니들을 돕기 위해 일어선 것이었다. 지원 모임은 ‘위안부 110번’을 만들어 위안부 피해 사례를 모집했다. 그러던 중 송신도 할머니가 미야기 현에서 홀로 살고 있다는 익명의 제보를 받게 된다. 송신도 할머니를 돕기 위해 직접 찾아간 지원 사람들, 재일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과 송신도 할머니의 만남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사죄받고 싶어. 그래 맞다 맞어! "
한국인 할머니와 일본인 사람들, 그들이 가족이 되기까지 - “넌 일본인이고 난 한국인이다”
지원 모임은 할머니의 한 많은 사연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특히 할머니의 “나에겐 위안부 시절 낳은 당신들만 한 딸이 있다.”라는 말에 눈물까지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할머니가 일본 정부에 대한 소송 의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재일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어 재판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소송은 10년 간 지속되고, 할머니와 지원 모임은 가족 같은 관계가 됐다.
하지만 이들이 마음을 터놓고 함께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송 할머니와 지원 모임 사이에 큰 벽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장애물은 바로 전쟁이 남긴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의 감정적인 앙금이었다. 송 할머니는 지원 모임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힌 이들과 같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한 때 그들을 불신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지원 모임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다가서려 해도 할머니 쪽에서 ‘너는 일본인이고 나는 한국인’이라는 선을 먼저 그어버리곤 했다.
할머니의 이런 태도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장면은 할머니 남편의 유골을 묻으러 지원 모임 사람들과 할머니가 한국에 왔었을 때였다. 지원 모임의 한 일본인이 할머니에게 자신이 고인의 유골을 모시는 것을 돕겠다는 말을 하자 송 할머니는 “너는 일본인이고 내 남편은 한국인인데 네가 왜 내 남편의 유골을 모시겠다고 하느냐!”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일본인은 “할머니와 오랜 시간 재판을 준비하고, 일본 정부에 대항해 함께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할머니의 일본인에 대한 마음의 벽은 어쩔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송 할머니는 점차 지원모임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한다. 10여 년의 세월동안 지원 모임이 변함없이 자신을 도우며, 과거 일본의 잘못에 함께 분노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원 모임은 10년의 세월동안 소송에 드는 모든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할머니의 재판에 온 힘을 쏟았다. 영화 ‘나의 마음은지지 않는다’도 지원 모임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빛을 보이지 못했을 것이다.
할머니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은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분명하게 드러난다. 위안부로 끌려갈 당시와 비슷한 또래의 일본 여고생들을 보며 눈물 흘리던 송신도 할머니가 “나중에 성인이 되면 술이나 마시러 가자”는 여고생의 천진난만한 제의에 비로소 환한 미소를 짓는 장면은 할머니의 응어리진 한이 점점 풀어지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피해자답지 않은 당당함 - “바보 같은 전쟁 두 번 다시 하지 말아라”
송신도 할머니는 전쟁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인들로부터 받은 끔찍한 고통을 쉽게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송 할머니는 전쟁에 대한 자신의 분노와 증오를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남들 앞에서 자신의 위안부 시절 경험을 얘기할 때면 눈물지으면서도 거침없이 하고 싶은 말은 하고야 마는 것이다.
두 번의 재판 패소 후에도 국회의원을 찾아가 “지들끼리 전쟁하면 될 것을 뭐가 억울해서 조선 여자들을 끌어다가 위안부로 삼은거냐!”라며 전쟁의 폐해와 위안부의 강제 징용에 대해 따지는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이다. 할머니의 그런 당당한 모습은 지원 모임 사람들이 할머니를 10여 년 동안 지원할 수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 중에 하나였다.

위안부 시절의 이야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재판에서 세 번 모두 패소. 결과만 놓고 보자면 이렇게 슬픈 영화도 없다. 하지만 언제나 당당하고 거침없는 송신도 할머니와 할머니를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지원 모임 사람들이 있기에 영화는 슬프지 않다. 이번 주 주말, 영화를 보러 갈 계획이었다면 ‘나의 마음은 지지 않는다’가 어떨까? 다큐멘터리 영화가 재미없다는 편견을 버리고 영화를 감상해보자. 영화 시간 내내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위안부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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