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 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 주었다.


산다는 것의 의미를 알지 못한 채 한숨 쉬어질 때,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들이 나무처럼 든든하게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나무처럼, 필요하다고 하면 언제든 함께 해 줄 수 있는 나무처럼, 우리 곁에 아주 오래도록 머물러 준 소중한 존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가을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수영(인문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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