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지난 1168호 여성부 기획 ‘우리 조건보고 결혼할까요?’를 쓰기위해 결혼정보회사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었다. 경기침체 속에서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배필을 찾기 위해 결혼정보회사를 찾고 있었다. 특히 기자가 놀랐던 것은 많은 이들이 보다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과 만나기 위해 결혼정보회사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결혼을 하기 위해 자신을 등급화하고 점수화하는 이러한 현상에는 물질적인 조건만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이 고스란히 비춰져서 기자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조건만을 따지는 이러한 사회 현상은 비단 결혼 적령기 남ㆍ여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너 소개팅 할래?” 혹은 “나 남자친구 생겼어!”라는 말에는 어김없이 상대방의 학교와 자가용의 유ㆍ무 그리고 집안배경에 관한 질문이 돌아온다. 과거의 젊은이들은 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지금의 젊은 여성들은 ‘사’자로 끝나는 직업의 남성을 찾기 위해, 젊은 남성들은 ‘열쇠’ 많은 여성을 찾기 위해 노력을 거듭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평균 이혼율은 세계 3위에 이르며 이혼을 야기하는 가장 큰 원인은 ‘성격 차이’라고 한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데에는 조건을 따지는 우리사회의 풍토가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이혼이 쉬워졌을까. 또한 ‘조건’이 맞아서 결혼했으면서 ‘사랑’이 없는 결혼 생활을 원망하다가 결국 이혼을 한다고 하니, 그들은 왜 좀 더 신중하지 못했던 걸까.

사회의 최소구성원인 가족이 결합하고 해체하는 것은 숫자를 더하고 빼는 일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므로, 좀 더 신중한 만남이 전제 되어야 한다. 3년간의 짝사랑 끝에 고백을 했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연애 이야기처럼, 10년간 풋풋하게 연애를 했다는 부모님의 이야기처럼 우리도 ‘조건’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결혼을 위해서 갖는 만남이 아니라, 만남을 갖다보니 결혼이 하고 싶어지는 그런 만남이 이뤄질 때, 행복한 결혼 생활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몽룡과 성춘향의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야기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의 조건 없는 사랑 이야기가 이제는 정말로 말도 안되는 ‘소설’ 속 이야기로만 남게 될 것 같아서 문득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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