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시카고 그랜트 공원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의 연설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흑백의 지지자들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이뤄낸 희열에 차 있었다. 첫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킨 미국은 민주주의의 저력을 전 세계에 과시하면서 스스로를 대견스러워했다. 비인간적인 노예제도를 폐지했지만 오랜 기간 동안 소수 인종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연방국가 체제는 멜팅 팟(melting pot)이 아니라 섞이지 않는 샐러드 바(salad bar)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미국은 지금 안팎으로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면서 초강대국의 체면에 많은 손상을 입고 있다. 독불장군식의 전쟁과 부시 대통령의 일방적 외교로 세계무대에서 미국은 스스로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았다. 우리가 미국의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친구와는 이야기하고 적과는 이야기하지 않는 초강대국은 환영받지 못한다. 케냐인 부친을 두었고 인도네시아에서 성장한 경험이 있는 오바마는 보다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미국 경제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서브 프라임 사태로부터 촉발된 금융위기는 탐욕스런 자유 방임적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를 전 세계에 드리우고 말았다. 긴 불황의 터널로 들어선 미국 경제에 대한 위기감은 팽배하고 빈부 간의 격차는 더 심화되었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많은 미국인들은 미국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판단했고 변화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사상 최고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오바마 캠프가 거둔 6억 달러가 넘는 기부금의 95%도 평균 200달러의 소액 기부자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모아주었다고 한다.

변화와 통합의 리더십을 내세운 새로운 미국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국제관계 현실은 냉혹하다. 한미 FTA와 북핵 문제와 같은 현안에 부시 정부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온 오바마와 어떻게 마주 대할지 우리에게는 차분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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