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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 버리고 음악을 택한 정의로운 작곡가
남궁가람 기자  |  smpnkgr75@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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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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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스키 코르사코프

   
 

얼마 전 피겨 요정 김연아 선수가 미국 워싱턴 주에서 열린 피겨 그랑프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간에 관심을 모았다. 그 때 김연아 선수가 환상적 피겨 안무를 선보였던 곡이 바로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작곡한 교향모음곡《세헤라자데》이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올해로 서거 100주기를 맞는 러시아 국민악파 음악의 거장으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표제음악과 오페라 곡들을 다수 작곡했다. 지금부터 삶을 음악으로써 풍미했던 그의 생애와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해군사관에서 음악가가 되기까지
림스키코르사코프는 1844년 러시아 노브고로트 지방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6살 때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가 집안 가풍에 따라 해군사관이 되길 바랐다. 이로 인해 그는 더 이상의 정식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한 채, 12살 때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사관생도가 되어서도 림스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의 스승이자 친구였던 발라키레프와의 만남은 그를 해군사관에서 작곡가의 삶으로 인도했다. 졸업 후 해군사관이 된 림스키는 발라키레프의 소개로 큐이, 무소르그스키, 보로딘과도 알게 돼 ‘러시아 5인조’를 결성했고, 그는 발라키레프 밑에서 본격적인 작곡 교육을 받게 된다.
해군 군악대 지휘자로 활동하게 된 림스키는 당시 그가 3년 동안 원양항해를 하면서 작곡한 교향곡 《제1번, 제1악장》으로 큰 호응을 얻었다. 이 곡을 계기로 그는 페테르부르크음악원 교수로 초빙돼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관현악법 원리』『화성악 실습』 등 다양한 음악 저서들을 집필하는 교육적 열의를 보인다. 그러나 그가 음악가로서 누렸던 부유한 삶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계기로 학생들이 일으켰던 혁명소동 때 학생들의 편에 섰다가 교수직을 박탈당했고, 그의 작품들은 연주금지 처분되는 수모를 겪는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았던 림스키는 계속해서 불후의 명곡들을 작곡해 나갔다. 국민악파 5인조의 일원이던 무소르그스키가 사망해 5인조가 해산되자, 그는 국민악파 음악 작곡을 그만두고 오페라 음악들을 작곡해 나갔다. 주로 러시아의 민요, 이교적인 세계, 그리고 권력에 대한 저항을 작곡의 소재로 삼던 그는, 자신의 음악적 경향을 따랐던 글라즈노프, 스트라빈스키 등 후배 작곡가 양성에도 힘썼다. 그리고 림스키는 당시 러시아의 독재를 풍자한 오페라 《금계》를 최후의 작품으로 남긴 채 심장병으로 삶을 마감했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천일야화, 세헤라자데
앞에서 언급한 《세헤라자데》는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작곡한 대표적인 교향모음곡 중 하나이다. 《세헤라자데》는 그가 페테르부르크음악원 교수로 재직할 때 작곡한 곡으로, 아라비안나이트 이야기 일부를 총 4악장의 음악으로 구성했다. 곡의 제목 ‘세헤라자데’는 폭군 샤리아르 왕이 밤마다 동침하고 그 이튿날 죽여 버리는 운명에 처했던 처녀들 중 한명이었다. 그러나 왕과 동침하던 날, 대단한 독서가였던 세헤라자데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왕을 즐겁게 해 죽음을 면하게 된다.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를 또 듣고 싶었던 왕은 그 다음날에도 그녀를 죽이지 않았고, 이렇게 천일 밤 동안 계속된 이야기들은 결국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왕은 세헤라자데와 진정한 사랑을 나누게 된다.
《세헤라자데》는 제1장 ‘바다와 신밧드의 항해’, 제2장 ‘카달란 왕자의 이야기’, 제3장 ‘젊은 왕자와 젊은 공주’, 그리고 마지막 제4장 ‘바그다드 축제’로 구성됐다. 거칠지만 위엄 있는 샤리아르 왕과, 상냥하고 사랑스러운 세헤라자데의 묘사가 4악장을 아우르는 공통적 주제가 돼 이국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선율로써 나타난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부유한 삶을 살았지만 사회에 대한 정의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말년에 가난한 음악가의 삶을 선택했다. 러시아를 대표했던 작곡가로, 강한 색채를 지녔으면서도 명쾌한 음율이 특징적이었던 그의 음악은 앞으로도 그의 자국민들 뿐 아니라 세계인들의 귀를 즐겁게 해나갈 것이다.

*‘피의 일요일’ 사건 : 1905년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동궁광장에서 일어난 노동자 학살사건. 500~600명의 사상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를 냈으며, 훗날 러시아혁명의 발단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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