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지난 달 23일, 1167호 창간 특집면 기획을 위해 자료실에 보관돼 있던 옛 신문을 찾아봤다. 1960년대 부터 1980년대는 학우들이 접할 수 있었던 매체가 적었기 때문일까. 학우가 직접 쓴 문예작품, 다양한 투고 글 등 많은 숙명인이 참여했었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당시 숙대신보는 숙명인의 참여가 활발한 신문이었던 것이다.

기자는 편리해진 제작환경에서 신문을 만드는 지금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더 컸다. 지금의 숙대신보는 숙명인들의 활발한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현재 학우들의 글 기고를 받는 숙대신보의 메일함은 거의 비어있다. 그래서 여론면을 채우기 위해 기자들이 직접 필자를 섭외하는 경우가 많다. 기자는 어느 숙명인에게 “안녕하세요. 숙대신보 기자인데요. 부탁드리…….”라고 말했다가 외면당한 경험도 있었다. 지난 호 창간특집 설문조사에서 4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숙대신보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는 의견은, 60년대와 달리 지금의 숙대신보가 학우들에게 친숙하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숙명인이 접하는 매체가 많아졌고, 인터넷 게시판과 같이 쉽게 자기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도 생겨났다. 물론 숙대신보 또한 이러한 흐름에 따라 숙명인의 활발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자는 상대적으로 숙대신보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옛날에 비해 저조한 점이 항상 안타까웠다.

원고지 대신 컴퓨터로 기사를 쓰고, 신문의 구성도 많이 변화했지만 옛날의 숙대신보와 2008년의 숙대신보에도 변하지 않는 공통점은 있다. 바로 숙대신보의 1순위 독자는 숙명인이라는 점이다. 숙명의 소리를 담고 있는 숙대신보는 독자인 숙명인과 함께 만들어 나갈 때 더욱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신문은 독자가 만드는 여론과 관심 속에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숙명인이라면 누구든지 숙대신보를 통해 자신의 의견과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이러한 참여가 보다 나은 신문을 만들고, 보다 나은 숙명을 이끄는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숙명의 역사가 기록되고 있는 숙대신보의 지면 한 부분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어떨까. 숙대신보는 지금도 변함없이 숙명인을 향해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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