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교양서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해설한 책이다. 그 동안 열하일기를 「호질」「일야구도하기」등의 단편집으로만 여겼던 사람이라면 색다른 관점에서 열하일기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1780년 여름, 연암(燕巖) 박지원은 청나라 황제의 칠순잔치에 가는 사절단과 함께 압록강을 건넌다. 황제의 피서지인 열하(지금의 중국 허베이성 청더 지방)로 가기 위해서였다. 연암은 이 여행에서 수행원의 감시를 따돌리고 상인들과 몰래 만나는가 하면, 비밀 조직과 접선하듯 청의 선비들과 만나 필담을 나눈다. 공식 사절단이 아닌 그는 끊임없이 대열에서 이탈해 금기를 건드리고 낯선 문화를 탐색하는 등 온갖 이질적인 것과 적극적으로 부딪힌다. 이 여행을 끝낸 연암은 조선으로 돌아와 ‘열하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자는 ‘열하일기’가 단순히 이국적인 풍경을 나열하거나 낯선 공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를 엮은 여행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저자는 “열하일기는 여행에 담긴 것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찐한’ 접속이고, 침묵하고 있던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견의 현장이며, 새로운 담론이 펼쳐지는 경이의 장이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설명하는 박지원의 자유로운 사색을 보고 있으면, 근대 이전의 중국과 조선이 새롭게 보인다. 연암의 예민한 관찰력을 통해, 종속 관계였던 청나라와 조선의 고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저자는 연암의 글이 항상 찬사와 비난 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문인들과 달리 연암은 문체의 혁명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때문에 정조는 이러한 열하일기를 금지하고, 박지원에게 순수한 고문(古文)으로 글을 지어 바치게 하기도 했다. 이 일화가 유명한 문체반정(文體反正)이다. 열하일기는 조선을 뒤흔들 정도로 기존의 제도에서 벗어난 글이었던 것이다.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는 조선 사대부의 짐을 훌훌 털어버린 박지원의 자유로움이 그 시대에는 통하지 않았던 것일까?

 

한편, 저자의 설명을 떠나서 열하일기에는 연암의 유머가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연암 사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모순과 역설, 긴장과 돌출은 모두 ‘유머스럽게’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암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조차 유머를 사용했고, 덕분에 그의 글에는 언제나 재미가 가득했다. 조선이 최고라는 생각에 빠져있는 사대부를 풍자하는 연암의 포복절도할만한 문장을 읽으며, 그가 요즘말로 ‘센스가 넘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를 열하일기에 반하게 만든 점 중의 하나는 연암의 ‘유머감각이 있는’ 글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연암의 문장을 ‘개그의 향연!’ 이라고 표현하며 열하일기가 유머로 시작해 유머로 끝난다고 설명한다.

 

책의 첫 장에서부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적인 힘은 무엇보다 저자의 천연덕스럽고 유쾌한 필력일 것이다. ‘빛나는 명랑성! 지독한 아이러니! 지독한 패러독스!’ 저자가 펼치는 이야기의 매력은 비단 이러한 너스레뿐만이 아니다. 박지원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 바탕에 깔린 설명을 읽는 동안, 자신을 향한 제도적 억압조차 유쾌한 문장으로 풀어낸 연암의 멋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동안 알지 못한 우울증을 앓았던 청년 박지원, 과거시험에 붙지 않으려고 애를 쓰던 선비 박지원, 아내보다 벗을 좋아했던 인간 박지원의 생애를 넘어 조선시대 지성사에 한 획을 긋는 열하일기의 심오함……. 이 책을 덮는 순간, 열하일기는 분명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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