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사랑을 나눴던 어떤 여성보다 오페라를 사랑했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마치 ‘오페라를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마농 레스코》 《토스카》 《나비부인》 등의 수많은 역작을 남긴 ‘지아코모 푸치니’이다.


◆ 푸치니는 이탈리아의 유서 있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음악가로서 성공하길 바랐던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그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는 16세에 오르간 경연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차츰 숨어있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주로 오르간 등의 악기를 다뤘던 그는, 어느 날 당대 최고의 작곡가였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아 평생 오페라만 작곡할 것을 결심했다.


오페라에 푹 빠졌던 푸치니는 26세에 처녀작 《빌리》로 호평을 받고 《마농 레스코》로 크게 성공하면서 작곡가로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다. 그가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데는 푸치니와 함께 ‘황금 트리오’라 불리던 대본 작가 자코사와 일리카가 있었기 때문이다. ‘좋은 대본이 없으면 나의 음악은 쓸모가 없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는 푸치니는 대본을 만드는데 그만큼 혼신을 쏟았다. 이런 그를 도와 자코사와 일리카는 멋진 대본을 써냈고 이에 위대한 작품들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 작품들이 바로 푸치니의 3대 걸작이라 불리는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이다. 3대 걸작들을 통해 푸치니는 베르디, 바그너와 함께 세계 오페라 극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곡가가 됐다.


작곡가로서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중국의 전설을 다룬 희극 《투란도트》를 보고 감명받은 푸치니는 투란도트의 오페라화를 결심했다. 그러나 말년에 그는 인후암에 걸리면서 《투란도트》를 마무리 하지 못한 채 그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알파노에게 피날레를 맡기고 브뤼셀에서 숨을 거뒀다.


◆ 푸치니의 작품은 가난한 예술가를 다룬 《라 보엠》과 비운의 여가수 이야기를 다룬 《토스카》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이뤄졌으며, 음악적으로는 이태리 오페라양식에 바탕을 둔 친숙한 멜로디를 구사한다. 오페라 작곡가답게 그의 음악은 연기와 결합할 때 비로소 놀라운 효과를 나타낸다. 그가 희극 작곡가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의 서정적인 노래는 오페라 속에서 대사와 어우러지면서 각 장면마다 극적인 감동을 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치니는 《토스카》 《나비부인》 등 서정적인 ‘사랑’을 다루는 오페라 작곡가로서는 성공했지만 정작 자신의 ‘사랑’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감성이 풍부한 음악가였기 때문일까? 그는 바람기가 매우 심했다고 한다. 그의 공연이 성공할 때마다 수많은 여자들이 그를 유혹했고, 그 또한 오페라의 여주인공을 보다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여배우들과 사랑을 나눠야한다며 자신을 정당화했다. 결국 그의 바람기를 견디지 못한 아내 엘비라가 푸치니을 의심하고 병적으로 집착하면서 이내 둘은 헤어졌다. 오페라에 등장하는 ‘비련의 여주인공’을 유난히 사랑했던 푸치니. 그의 아내마저 비련의 여자로 만든 채, 자신의 인생에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다.


비록 푸치니는 자신의 사랑에 흠을 남겼을지라도 그의 곡만큼은 완벽을 추구했다. 그는 소재선택ㆍ대본작업ㆍ작품다듬기에 늘 최선을 다했고 스스로 ‘극작을 위해 작곡하도록 신의 명을 받은 사람’이라 칭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는 극을 사랑했고 오페라를 사랑했다. 이처럼 오페라를 향한 푸치니의 끝없는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에 이탈리아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서 지난 100여 년간 그의 작품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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