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대 총동문회장 정춘희(영어영문 66졸) 동문

"이제 학교를 떠나게 되더라도 우리들의 열정만은 숙명 곳곳에 남을 것입니다.” 지난 23일, ‘총동문회 정기총회’에서 임기를 마친 제 25대 총동문회장의 얼굴은 밝았다. 2000년 9월부터 4년간을 부회장으로, 그리고 다시 4년을 회장으로 오랜 시간 총동문회를 진두지휘했던 그는 이제 막 다음 주자에게 그 바톤을 넘겨줬다. 제 25대 총동문회장 정춘희(영어영문 66졸) 동문의 열정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잊고 살았던 모교, 다시 이어진 숙명적 고리


8년여의 시간동안 총동문회 임원을 맡았지만 사실 그는 1972년부터 미국에서 거주하며 숙명여대란 이름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고 고백했다. 그랬던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1995년 우리 학교가 제 2창학을 선언했던 시절이었다. “한창 등록금 한 번 더 내기 운동을 하던 때였어요. 저는 잠시 한국에 나와 있던 차에 학교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고 발전기금을 모으고 있다는 얘길 들었죠. 그 소식을 듣자 문득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모교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학교에 작은 힘이라도 되고 싶었다는 정 동문은 당시, 3천만원의 발전기금을 기탁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다시 몇 년의 시간이 지난 2000년 9월, 당시 총동문회장이었던 정정애(사학 66졸) 동문은 가족 여행을 떠나려는 정춘희 동문을 찾아 김포 공항까지 달려와 총동문회 부회장직을 맡아주길 부탁했다. “나는 외국에 사니까 못 하겠다는데도 꼭 좀 해달라고 부탁하시는 거예요. 부회장은 하는 일이 없으니까 이름만 올리면 된다고 하셔서 수락했는데…내가 속은 거지, 그때 발목 잡힌 거야.(웃음)” 정 동문은 그 일을 계기로 우리 학교와 ‘끊을 수 없는 숙명의 고리’를 엮게 된다.

잊지 못할 '창학 100주년 전야제'와 '라이브 옥션'


제 24대ㆍ25대 총동문회를 이끌면서 정 동문은 창학 100주년 기념행사와 카페테리아 블루베리 운영 등 학교 발전 기금을 모으기 위한 많은 사업을 진행했다. 그 중에서도 정 동문의 기억에 가장 크게 남은 것은 2,000여명의 동문과 함께한 ‘창학 100주년 전야제’이다. “멋지고 획기적인 행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 단순한 기념식이 아니라 학교 발전에 도움을 주는 행사로 만들고 싶었어요.” 정 동문은 고민 끝에 국내 대학에서는 보기 힘든 ‘라이브 옥션’을 열기로 결정했다. “우리 동문들이 구걸하다시피 하며 여기저기서 물품을 받아왔어요. 심지어 저는 집에서 남편이 하려던 넥타이며 내 화장품, 옷, 집안 살림을 다 가져와 팔았죠”


영화배우 정준호와 차인표 그리고 쇼호스트 유난희(가정관리 88졸) 동문의 사회로 진행된 라이브 옥션은 시작하자마자 모든 품목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갔고 단 몇 시간 만에 16억원이나 되는 발전기금을 벌어들였다고 한다.

정 동문의 업적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2006년 5월 문을 열어 총동문회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테리아 블루베리이다. 블루베리는 우리 학교의 기념품을 판매하고 카페테리아를 운영해 학교의 발전기금을 마련하고자 문을 열었다.


왜 ‘블루베리’가 됐느냐고 묻자, 정 동문은 “블루베리의 '블루'는 우리 학교의 청색을 나타내고, '베리'는 숙명에서 배출되는 결실을 의미해요. 그래서 나는 블루베리가 외우기 쉽고 발음도 좋고 푸른 꿈을 나타내는 것만 같고 여러 가지로 그 이름이 참 맘에 들어요.”라고 답했다. 후배들이 좋은 음식만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정 동문은 블루베리에서는 최고급 식재료만을 사용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먹기 싫은 건 우리 학생들에게도 먹이고 싶지 않아요. 난 정말 우리 학생들을 웰빙 음식 먹고 가끔은 좋은 커피도 사 마실 수 있는 멋쟁이로 만들고 싶어.”

숙명에서 받은 두 번째 졸업장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정 동문이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총동문회장 직을 수행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총동문회장직을 수락하면서도 외국생활을 오래 한 내가 과연 이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결국엔 학교에 봉사하기로 마음 먹었죠.” ‘한번 입 밖에 낸 말은 반드시 실현시킨다’고 말하는 정 동문은 지난 4년 동안 총동문회장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한다. “밤 비행기 타고 필라델피아에 있는 아들 대학 졸업식에 갔다가 그 다음날 다시 서울에 와서 ‘창학 100주년 전야제’ 준비를 했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내 스스로도 어떻게 그랬나 싶어.”


정 동문은 총동문회를 이끈 것이 인생의 큰 보람이었으며 가장 뜻 싶은 봉사였다고 말한다.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졸업장을 받으려면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인생을 정리하는 나이에 숙명여대에서 저에게 봉사의 기회를 주었죠. 이젠 나에게도 졸업장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요.(웃음)”


인터뷰를 마치며 정 동문은 그동안 바쁜 일정 탓에 후배들과 자주 만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와 후배에 대한 정 동문의 사랑은 8년간 그가 남긴 열정의 발자취로 숙명 곳곳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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