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국제학술대회 참석을 위해 바르셀로나를 방문했다. 매년 회의참석과 공동연구 때문에 여러 유럽도시를 다니면서 유럽도시의 전형적인 구성과 느낌에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던 차였다. 그 도시는 프랑코 절대정권을 무너뜨린 시민 의거가 있었던 ‘정치적’ 도시로 우리에게 가장 많이 인식돼 있다. 4일을 한 도시에서 보낸다는 것이 성격상 그다지 즐거운 일로 느껴지지 않아 구석구석을 돌기로 했다.


학회에 참석한 하루를 뺀 나머지 3일은 너무나도 인상적인 경험의 시간이었다. 그 도시에 연고를 둔 바르셀로나 축구팀 박물관과 경기장을 관람하기로 했다. 이 팀은 상업광고를 하지 않고 유일한 광고는 국제아동기금(UNICEF) 로고를 선수 유니폼 가슴에 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간 수익을 올리는 명문 프로축구팀이 상업광고를 하지 않고 시민들의 지원으로 성장하여 시민들에게 그 이익을 환원하는 명문 구단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하루 이틀을 더 머물며 쉽게 알 수 있었다.


마드리드라는 또 다른 경쟁의 도시가 절대 권력에 치부한 넘치는 자본과 환락에 빠져있던 즈음 이 도시의 시민들은 분연히 일어나 독재자를 시민들의 피로 몰아내고 스페인 민주주의를 꽃 피웠다. 민족과 국가를 위해 온 시민이 몸을 던진 것이다. 이 도시의 저항은 국가적 저항으로 발전하였고 결국 절대 권력은 무릎을 꿇었다. 작은 도시 바르셀로나를 구석구석 돌아보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어디를 가도 높은 고층 빌딩을 보기 어려웠다. 마치 평등을 위한 조용한 시민들의 외침을 느끼는 듯 했다. 어디를 가도 이른바 부촌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시민들은 즐겁고 환한 웃음으로 ‘무장’했다. 도시 어디를 가도 휴지 한 장 찾아 볼 수 없었다. 대영제국보다 아니 지금의 미국보다 더 많은 지구의 땅과 바다를 찾고 지배했던 대제국의 심장은 유흥가로 넘실대는 다른 유럽의 대도시들과는 다른 평화와 평등 그리고 자유와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도시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들은 억지로 새로운 것을 지으려 하지 않았고 그들이 경험한 역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지키려 했다. 록밴드 퀸의 노래에 나오는 “바르셀로나~”가 왜 그리 우렁찬 경외의 느낌으로 우리에게 들려지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여행이었다.


젊은이들이 주도하여 온 국민이 함께 한 2002년 월드컵 응원과 최근의 대형 촛불시위는 변화에 대한 자연스런 적응이기도 하고 변화에 대한 조용한 요구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민주화를 이룬 우리의 시민의식도 조용하지만 영원한 바르셀로나의 그것과 같기를 바라는 마음은 지나친 욕심인가? 우리가 이루어낸 그 엄청난 민주화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 존경하는 것으로부터 그 욕심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한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