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안양예고 유 수 지

오래전, 자주 입었던

주머니가 유난히 큰

쟂빛 바지를 찾았다.


갑작스런 밤비처럼 봄은 오고,

옷 정리나 해볼까 해서

옷장을 뒤지던 것인데,

어쩌다 이 바지를 꺼내고 말았다.


그 큰 주머니 속엔

파도같이 사륵사륵 소리를 내는

무엇인지 모르는 종이가 들어있고,


청청히 깊은 바다 아래를

내려다 보는 듯한 설렘으로

주머니를 뒤지던 나는,

혹,내가 너무 겁없이

바다 속에 불쑥 손을 넣은 것이 아닌지

걱정하며,쉽게 손을 꺼내지 못한다.


돌고래같이 순하고 발랄한

이야기가 적힌 편지이기를 바라며

꺼낸 손가락 사이

닻에 걸린 미역줄기처럼 끌려나온 것은

서해로 가는 기차표였다.


어느날의 시간까지

정확히 써져있는 종이인데,

내가 언제 무슨 이유로

서해까지 갔다왔단 말인가.


기억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는지

바다의 짜디짠 냄새도

킁킁,거리지 못하고 있던 나는,

주머니 속으로 다시 기차표를 넣는다.


쉽게 버릴 기억이 아닌 것 같아

반듯하게 접어

다시 옷장속에 바지를 넣으려는데,


문득,주머니에서

어느날의 파도소리가

사륵사륵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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