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미만의 뼈있는 미국 쇠고기를 즉시 개방하고, 이후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도 점차 수입하겠다.’ 지난 달 18일 체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를 둘러싸고 대한민국은 지금 ‘광우병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국가 주권’에서부터 ‘국민 건강’에 이르기까지 쇠고기 협상에 관련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는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다.

미국 사람도 벌벌 떠는 미국산 쇠고기?

지난 2월, 미국에서는 사상 최대의 쇠고기 리콜 사태가 일어났다. 대상은 ‘웨스트랜드-홀마크 미트 컴퍼니’에서 생산된 6만4천 톤의 쇠고기로 도축장에서 소를 학대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시민단체에 의해 공개되며 파장이 일어났다. 해당 회사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는 ‘downer cow(주저앉은 소)’에게 전기충격을 가해 일으켜 세운 뒤 도축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밝혀져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더욱이 리콜 대상의 4분의 1이 이미 학교급식과 패스트푸드점에 공급됐으며, 해당 도축업체가 미국 농무부가 선정한 학교급식 우수공급업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은 더 커졌다. ‘주저앉은 소’와 광우병과의 연계 관계가 아직 정확히 규명되지는 않았지만, 미 농림부(USDA)의 규정상 아파서 걷지 못하는 소는 식용으로 쓰일 수 없다는 사실에 비춰 미국 쇠고기 관리의 허술함, 광우병과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동물성 사료’ 역시 미국 쇠고기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동물성 사료란,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SRM)이 포함된 소의 부산물, 닭, 돼지 등을 원료로 만든 사료이다. 유럽과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는 현재 ‘동물성 사료 금지 조치’를 취하고 있다. 쇠고기 생산과정에서 위험물질을 제거하더라도, 동물성 사료를 소에게 먹이면 소가 위험물질을 먹고 광우병에 ‘교차 감염’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소 도축과정에서 나온 광우병 위험물질을 전량 폐기하며 다른 동물의 사료로의 이용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동물성 사료 규제는 조금 낮은 수준이다. 지난 4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과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는 “미국은 ‘반추동물’ 육골분을 소에게 먹이는 걸 금지했을 뿐, 여전히 돼지와 닭 육골분을 소에게 먹이고, 소 육골분을 돼지와 닭에게 먹이고 있다.”며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현재, 국제수역사무국(OIE)은 미국을 광우병 위험 등급 중 두 번째인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판정하고 있다. 이는 무시할만한 광우병 위험국가, 통제된 광우병 위험국가, 결정되지 않은 광우병 위험국가의 3단계 중 두 번째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2005년 OIE 총회를 통해 3단계로 등급을 축소하기 전까지 원래 광우병 위험 등급은 5단계로 세분화 됐었다. 또한, 용어 역시 덜 위협적인 것으로 변경돼 OIE에도 역시 미국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높다.

‘안 돼’라고 할 땐 언제고…

정부의 쇠고기 협상이 비판받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산 쇠고기를 둘러싼 정부의 입장이 이전과 180도 변화했다는 것이다. 작년 10월 가축방역협의회 회의 결과에서 정부는 ‘과학적 근거에 비춰 뼈는 허용하더라도 30개월 미만을 고수하며, 소의 연령에 관계없이 광우병 위험물질을 제거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또한,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은 지난 5일 기자브리핑에서 작년 9월 개최한 ‘미국산쇠고기수입위생조건개정협의대비전문가회의’ 문건을 공개했는데, 이 문건에는 농림수산식품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정성에 대한 입장을 바꾼 사실이 담겨있다. 지난해 미국이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을 요구해왔을 당시, 농식품부는 ‘OIE에서도 30개월 이상 소에서 생산된 쇠고기에 대해서는 안정성을 과학적으로 완전히 보장하지 못하며, 특히 최근 연구결과에서 28개월짜리 소에서도 광우병 원인 물질인 프리온 단백질이 검출됐다.’는 근거를 내세워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가 바뀐 뒤 ‘광우성 특성 물질만 제거하면 99.9% 안전하다.’며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참여연대는 4일 논평을 통해 “농림부가 1년 전에는 미국 광우병 위험이 풀리지 않았다며 국제수역사무국에 이의를 제기하더니, 이제는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는 무책임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 대한 영문합의문이 4일 미국 비정부기구 영문사이트(www.bilaterals.org)에 공개돼 협상 내용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졸속협상’이라는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합의문에는 ‘우리 정부는 미국에서 광우병 1건이 아니라 여러 건이 발생해도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에 대해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박탈하지 않는 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수입중단 조치를 내릴 수 없음’ ‘미국산 쇠고기 검역과정에서 전수조사할 권한 없음’ ‘소의 뇌, 척수 등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이 발견돼도 표준검사비율(샘플조사)만 적용’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한, 30개월 이상ㆍ이하를 구분하는 연령표시 부분이 미흡하고, 미국이 동물사료 금지 조치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실질적인 제재 수단이 없다.

또한, 이번 쇠고기 협상이 한미 FTA의 미국 의회 비준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발판이었다는 의혹의 목소리도 높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캠프 데이비드 방문을 코앞에 두고 쇠고기 협상에 관한 긴급회의를 연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의 건강은 뒷전으로 한 채 성급하게 협상을 타결했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도 지난 4일 논평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불신과 광우병 안정성 논란으로 국민 95%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데도, 농림부ㆍ복지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 긴급 지시로 담화문을 냈다.”고 말했다.


정부는 광우병에 대한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우려가 ‘과장된 것’이라고 일축한다. 지난 6일 정부는 한나라당과 당정 협의를 갖고 미국 쇠고기에 대한 대책을 발표했다. 모든 식당과 급식소에서 원산지 표시를 강화하고, 특정 위험 물질에 소의 나이를 표시하도록 한 것, 미국 내 수출용 도축장에 특별 검역단을 파견하는 것이 그 일부이다. 그러나 원산지 표시 대상 음식점의 기준을 넓혀도 여전히 80%의 음식점은 원산지 표시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국민들을 납득시킬만한 대책은 제시되지 못한 상태이다.

*광우병 특정 위험물질(SRM): 광우병의 원인인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 많이 들어있는 소의 부위를 뜻하는 말이다. 소의 두개골, 척추, 편도, 내장, 장간막 등이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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