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을 꼬집는 말로 ‘냄비근성’이라는 것이 있다. 한 번에 보글보글 끓어올랐다가 짧은 순간 차갑게 식어버리는 냄비가 쉽게 열광했다 사그라지는 한국인의 습성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말이다. 이 말은 이제 초등학생도 알 정도로 보편적인 용어가 됐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써 그리 유쾌한 말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보고 있자면 ‘한국인이라 냄비근성’이 아니라 ‘한국에 살아서 냄비근성’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한국에서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냄비근성이 된다는 말이다. 시끌시끌 복잡다난한 세상이다.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사건들은 한 달을 주기로 꼭 ‘바뀐다.’ 사람들에겐 신경 쓸 일이 많기도 하다. 그렇다면 냄비근성의 의미도 바뀌어야 한다. 빨리 뜨거워지고 빨리 식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뜨거워진 채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말이다.


신경 쓸 곳이 많아 이곳 저곳 옮겨다니는 것이 냄비근성이라면, 고작 두 달 반전에 출범한 새 정부는 국민들의 냄비근성에 더욱 불을 지핀다. 영어몰입교육이라는 말로 교육계를 술렁이게 하더니, 청와대 ‘강부자’들의 땅투기와 17억 6천만 원이라는 ‘평균’적인 재산 내역으로 서민들의 맥을 턱하고 풀리게 했다. 취임 전부터 논쟁이 됐던 대운하 문제도,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를 묻고 싶은 의료보험 민영화 방안도, 최근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는 한미쇠고기협상까지, 짧은 기간 동안 벌여놓은 일들은 많기도 하다. 온라인에는 무엇에 먼저 끓어올라야 할지 이리저리 혼란스러운 네티즌들로 가득하다.


아마 새 정부의 남은 5년 임기 동안 ‘냄비’들은 더 많이 생길 것 같다. 어쩌면 정부는 ‘국민들의 관심을 이리저리 돌리다보면 반대여론이 많아도 해버릴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효선이 미선이로부터 시작된 촛불은 여전히 불타고 있지 않은가. 비록 한미 FTA 저지, 비정규직 철폐, 등록금 동결으로 간판은 바뀌어 왔지만 말이다.


정부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나라의 국민들은 ‘잊은’ 것이 아니라 ‘쌓아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름을 바꿔가며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국민들의 마음속에서는 효선이 미선이도, 88만원 세대의 분노도, 등록금 천만 원도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지금 청계광장에서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칠 수밖에 없는 한국인의 냄비근성은 그래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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