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살짝 지난 초여름, 그야말로 살랑살랑 바람이 불고 꽃은 흐드러지고 아이들의 옷이 화사하다. 이제 중간고사도 끝났겠다, 남아있는 리포트들만 어찌하면 당분간 즐거운 대학 생활을 누릴 수 있겠다. 하지만 이같은 낙관적인 풍경과는 달리 그 이면에 화사함과 대조되는 어두운 문제가 대학사회에 자리잡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말하자면 먼 나라 미국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편하겠다. 미국의 대학에서는, 작년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전역을 깜짝 놀라게 한 조승희 총기사건으로 죽은 서른 명보다도 훨씬 많은 천 명 이상의 학생이 해마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특히 MIT공대는 미국 내에서도 자살률이 높기로 유명한 대학인데,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학교 기숙사의 디자인을 학생들이 뛰어내려도 크게 상하지 않도록 들쑥날쑥하게 지을 정도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에는 서울대생의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포항공대에서는 학생들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자살률이 높은 밤 시간대에 캠퍼스에 음악을 틀어둔다.


화려해보이는 대학 뒷면에 슬그머니 보이는 이런 문제는 다른 나라, 다른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르지만 내 옆 친구가 자살 충동에 시달릴 수도 있고, 어쩌면 내가 우울증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 년 전 후배 하나가 우울증으로 얼굴 모습이 변해버린 일이 있다. 평소 활발한 친구였던지라 깜짝 놀랐고 많이 안타까웠다. 지금은 극복해서 다시 이전 모습으로 돌아왔지만 우울증, 자살과 같은 문제는 절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학생들이 자살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을 대학만의 문제 혹은 대학이 잘못한 문제라고는 볼 수는 없다. 이는 개인적인 문제와 가정의 문제 그리고 본인이 처한 특별한 상황 등의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이다. 그렇지만 대학이 잘못한 문제는 아닐지라도, 대학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MIT공대의 자살은 주고 중간고사 기간에 일어난다는 연구결과가 대학과 문제를 따로 생각할 수 없게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뭘까? 성적? 취업? 불확실한 미래? 1학년 수업시간에 어떤 선생님께서 “사람들이 다들 어딘가를 향해 정신없이 뛰고 있다. 뛰고는 있지만 누구하나 정확한 방향없이 그저 옆 사람이 달리기 때문에 뛰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지난 3월에 만났던 08학번 새내기는 매일 숙제가 있어서 매일 밤 숙제를 한다고 말했다. 또 잘 아는 2학년 후배 녀석은 토익 준비로 강남에 위치한 학원에 다니는데,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를 하기 위해 학교도 휴학하고 하루 세 시간씩 자며 공부하고 있다. 이는 열심히 사는 숙대생들,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뻔한 얘기지만우리가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는지 질문했으면 한다. 필자 역시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를 2년 정도 다니고 나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스물 일곱 살에야 하고 싶은 일을 발견했으니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사실 필자를 두고 하는 얘기다.


방향을 설정하려면 방향을 두고 고민하고, 방향이 보일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힘이 있는 자는 어떤 어려운 문제가 와도 우울증이나 자살로 빠지지 않는다. 문제에 빠지지 않을 뿐 아니라 문제를 타고 앞으로 나아간다. 서퍼들이 파도를 타고 나아가듯 문제란 것이 나에게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정신없이 달리기에 앞서, 잠시 멈춰 서서 내 속에 고민하고 기다릴 줄 아는 힘을 충전하기를 제안하고 싶다.
임정희(영어영문 석사 5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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