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내린 뒤

이정록

개 밥그릇에
빗물이 고여 있다

흙먼지가
그 빗물 위에 떠 있다

혓바닥이 닿자
말갛게 자리를 비켜주는
먼지의 마음, 위로

퉁퉁 분 밥풀이
따라나온다

찰보동 찰보동
맹물 넘어가는 저 아름다운 소리

뒷간 너머,
개나리 꽃망울들이
노랗게 귀를 연다

밤늦게 빈집이 열린다
누운 채로, 땅바닥에
꼬리를 치는 늙은 개

밥그릇에 다시
흙비 내린다

시는 봄비 내리는 시골풍경을 너무나 서정적으로 담고 있다. 도시에서 한 발짝 벗어나 마당에 개밥그릇이 있는 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몇 분 안 되는 시를 읽는 시간동안 봄비내리는 시골의 고즈넉함에 젖어든다. 아름다운 시어는 감동을 고조시킨다. ‘찰보동 찰보동’이라는 빗물소리는 우리가 잊고 살았던 동심의 아름다움이다. ‘노랗게 귀를 연다’는 표현은 노란 꽃망울의 느리지만 경이로운 개화의 감동을 전해준다. 이정록 시인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같은 이 시는 바쁜 일상에 젖어 잊고 살았던 자그마한 가치들을 떠올려 준다. 생동하는 봄을 느끼게 해주는 이 시를 가슴에 담고 남은 일 년을 보내는 건 어떨까 한다.
김성은(인문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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