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대표들을 뽑는 18대 총선거가 끝났다. 선거결과를 두고 많은 해석이 나온다. 보수의 승리니, 진보의 퇴장이니 하는 큰 얘기부터 누구누구는 세력이 커지고 누구누구는 어려워졌다는 작은 해석 까지 여러 말들로 넘쳐난다. 선거 결과를 두고 두렵다고 몸을 떠는 사람들도 있고 당연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있다. 항상 그렇듯 국민의 현명한 결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는 ‘국민 위대(偉大)론’을 설파하는 목소리도 빠지지 않는다.


앞으로 4년간 우리 국민 5천만 명을 대표할 300명을 뽑는 선거였으니 그 결과를 두고 이리저리 되새겨 보며 의미를 나누는 것은 당연할 뿐 아니라 나아가 권장할 만한 일이다. 사후 평가는 보다나은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같은 것이다. 기록적으로 낮은 이번 선거의 투표율에 관한 진지한 얘기도 그래서 필요하다.


이번선거의 총 유권자는 대략 삼천 칠백 팔십여 만 명이었다. 그중 투표한 사람은 천 칠백 사십여 만 명에 불과했다. 절반에도 못 미치는 46%만이 자신의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보통 젊은 세대보다는 나이든 세대의 투표율이 높고 여성 보다는 남성의 투표율이 높다고 한다.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20대의 투표율은 19%에 불과했다고 한다. 20대 여성의 투표율은 이것보다도 낮을 가능성이 많다. 정말 우려할 만한 일이다.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의사 표현의 하나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20대 여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들이 표현하려한 의사는 무엇일까? 애써 의미를 찾을 것도 아니고 애써 미화할 필요도 없다. 좀 더 솔직해 지자. 그러면 답이 보인다. 답은 ‘귀차니즘’이다.


‘귀차니즘’이란 말이 너무 비속하게 들린다면 ‘제노비스 신드롬(Genovese Syndrome)’이나 ‘방관자효과 (bystander effect)’와 같은 학술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이 개념들은 공개된 장소에서 수십 분간에 걸쳐 죽음에 이를 때 까지 폭행을 당하던 한 여인의 외침을 외면한 수십 명의 이웃들의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 집단 역학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들이 만든 용어다.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알아서 하겠지’하는 ‘책임의 분산(Diffusion of responsibility)’이 만든 불행한 결과가 제노비스 신드롬이고 방관자 효과다.


‘꼭 내가 하지 않더라도 되겠지’하는 가벼운 생각을 대다수가 하게 될 때 그 결과는 상상외로 치명적일 수 있다. 민주주의가 진척될수록, 책임이 분산될수록 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 그들이 외면한 것이 바로 길거리에 쓰러진 우리의 민주주의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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