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높아만 가는 물가에 이제는 오르지 않은 소비재를 찾는 것이 더 힘들 지경이다. “남편 월급만 빼고 다 올랐다.”고 말하는 한 주부의 넋두리에 서민 가계의 어려움이 짐작되고, “폭주하는 사료 값에 자식 같은 돼지들에게 하루건너 사료를 준다.”며 가슴을 치는 농민의 말에 보는 이의 가슴도 먹먹해진다.


민생안정, 서민경제회생……. 어느 시절에 이 구호가 안 나왔겠냐만은 지금처럼 이 말이 절실했던 적이 있었던가.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 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 지난 10월 이후 다섯 달째 3%대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생필품 위주로 계산한 생활물가 상승률은 4.6%로 서민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새 정부의 각료들은 서민경제를 운운하며, 민생현장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행보에 희망을 걸기에는 일부 장관들의 행동이 미덥지 않다. 지난 주말 여러 장관들이 서민들의 일터와 보금자리를 찾았지만, 30분도 안되어 자리를 뜬 장관이 있는가 하면, 전날 부랴부랴 장소를 섭외해 형식적이고 알맹이 없는 대화만 나눈 장관도 있다.


오스카와일드의 ‘어린 임금님’이라는 동화가 있다. 이 동화에서 어린 임금님은 꿈속에서 힘겹게 일하는 백성들을 보고 진정으로 국민을 생각하는 왕의 자세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어린 임금님은 꿈속에서조차 이렇게 많은 것을 느낀다는데, ‘절대 어리지 않은’ 장관님들은 연일 보도되는 국민들의 시름을 직접 눈으로 보고도 아무 것도 느낄 수 없나보다.


동화의 종반으로 가면, 한 노예가 갑자기 검소해진 어린 임금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궁으로 돌아가셔서 고급스런 아마포로 만든 보라색 옷을 입으십시오. 폐하가 소인들이 겪는 고통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보여주기식 ‘민생현장찾기’에 현장에 있던 국민들도 장관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을까? “청와대로 돌아가셔서 고급스런 비단으로 만든 보라색 옷을 입으십시오. 장관님들이 서민들이 겪는 고통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새 정부가 내놓은 서민경제 대책과 민생현장을 찾는 각료들의 모습이 더 이상 ‘강 건너 불구경’으로 비춰지지 않으려면, 그들은 먼저 고급스런 보라색 옷을 벗어던지고, 성의 있는 태도로 서민들의 고통을 나눠야 할 것이다. 3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과 형식적인 대화로는 서민들의 고통을 나누기는커녕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알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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