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기자. 어마무시한 직함이 필자에게 주어졌다. 이 직책을 이름 뒤에 얹고 달라진 점이 꽤 많다.가장 큰 변화는 ‘의문을 의심하지 않는 힘’이 길러졌단 것이다. 일상에서 필자는 질문이 많다. 대개 그런 질문들은 다른 이에게 '쓸데없는 것'이라 여겨진다. 이건 왜 그럴까. 어떻게 생겨난 걸까. 따위의 물음에 사람들은 관심이 많지 않다. 이런 경우 필자는 질문을 혼자서 먹어 삼킨다.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그러나 기자라는 직책을 등에 업은 필자는 그런 질문이 당연한 사람이 된다. 무겁고도 즐거운 일이다. 해야 할 질문을 못 했
오래전 인쇄 기술이 많이 발달하기 전엔 종이 한 글자 한 글자가 매우 중요했다. 고려시대 나라의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인고의 시간 끝에 팔만대장경을 만들어 낸 것처럼. 종교와 학문의 정보는 매우 중요하고 고귀하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도 많은 정보 속에 오히려 한 개인은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고 있다.필자는 지하철을 타고 통학한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늘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다. 그들은 유튜브 쇼츠(Youtube Shorts)나 인스타그램 릴스(Instagram Reels)를 시청하고 있다. 쇼츠와 릴스는 길이가 1분
지금도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에 숨이 막힐 때면 처음 아랍에미리트 두바이(Dubai)에 도착했을 때가 생각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지구 반대편의 그곳은 한국과 많이 달랐다. 이국적인 냄새와 12월임에도 숨을 쉬기 힘든 습한 열기는 그렇게 필자의 집이 됐다.아버지의 일로 갑작스럽게 가게 된 두바이는 한국과 모든 것이 다른 세상이었다. 살면서 외국인이라곤 TV에서만 봤던 필자에게 두바이는 평온하기만 했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버린 모래바람과 같았다. 중동의 거대한 모래바람을 버티는 건 힘들었다. 전혀 다른 사람들과
수료 후 독자의 입장에서 기사를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제1426호를 읽고 기자들이 지면을 열심히 완성했단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1면은 총학생회와 단과대 및 독립학부 보궐선거를 다뤘다. 인터뷰 형식으로 기사를 작성해 가독성이 좋았다. 기자가 인터뷰이를 섭외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다만 투표에 참여한 학우의 의견이 없고 제목이 길어 독자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지 못해 아쉽다. 2면에선 기자의 세심함이 드러났다. 교내 외부인 출입 문제를 다룬 기사에선 도표가 눈에 띄었다. 기사 전체를 읽지 않아도 해당 문제
지난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으로 인한 OTT 수요급증은 영화 시장에 큰 타격을 줬다.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양질의 영상을 볼 수 있게 됐다. 영화관에서 개봉 예정이던 작품까지 OTT를 통해 공개되며 영화관의 존재는 더욱 희미해지는 듯했다. 코로나19가 거의 종식된 현재, 영화관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영화관의 회복은 코로나19 종식만으로 이뤄진 건 아니다. 영화관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코로나19를 넘어선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관을 존재하게 하는 힘과 다시 활기를 되찾기 위해
‘사탄의 맷돌’. 「거대한 전환」의 저자인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초기 산업혁명의 파괴적인 영향력을 묘사하기 위해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에게서 빌려온 말이다. 한 시대가 역사의 한 장으로 덮여가고 새로운 시대를 규정하는 패러다임(Pparadigm)이 소용돌이칠 때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은 없을지도 모른다. 언젠가부터 혁명이다, 위기다, 재앙이니 하는 말들이 주변을 배회하는 탓에 이젠 잿빛 담론이 만성화될 지경이다. 물론 위안도 넘쳐난다. 혁명적인 변화가 초래한 위기는 오직 낡은 것들에게만 적용
영원히 잊히지 않을 듯한 순간이 있는가. 기껏해야 24년 살아봤다지만, 누군가 필자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한다면 아무래도 본지에서 보낸 2년이라 말할 것 같다.본지 기자로 활동하며 ‘왜 학보사를 하냐’는 말을 꽤 들었다. 고생할 게 뻔해 보이는데, 왜 사서 고생하냐는 걱정 어린 시선이다. 밤샘 마감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듣곤 고개를 젓는 이도 있었다. 학보사 활동이 힘들다는 걸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그만큼 값진 순간들이 많았다는 걸 말하고 싶다. 누군가 왜 하냔 질문을 할 때 매번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하곤 했다. 수료를 한 달 앞둔
‘계속해보겠습니다’. ‘소라’와 ‘나나’ ‘나기’의 이야기는 이 문장으로 연결된다. 이들은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아주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덤덤하게 풀어나간다. 모든 존재는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몫만큼 애써 살아간다. 작가는 그 모든 사소한 움직임 하나도 누군가에게 전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계속 살아가길 바라며.학내보도부 차장기자 김민경
언제부턴가 땅을 보며 걷는 게 습관이 됐다. 돌부리에 걸리지 않을까 더러운 것을 밟진 않을까 걱정하며 아주 좁은 발아래 땅만 주시했다. 그렇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면 필자를 기다려 왔던 것들이 한껏 반겨주는 걸 느낄 수 있다. 푸른 하늘과 눈부신 햇빛, 부드러운 꽃들과 풍성한 초록을 경험하며 필자는 조금씩 숙명의 봄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됐다.한국어문 23 임유민
갑작스럽게 마주해야 했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의 여파가 서서히 옅어지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대학은 강의실 수업을 대체할 임시방편으로 원격수업을 시작했다. 또한 ‘위드 코로나(With Corona)’를 논의하며 온라인 환경의 교수-학습 적용은 강의실의 대체물 그 이상의 가치로서 인식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전통적인 교육 방법을 재고하고 교수 및 학습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기회가 됐다. 이에 코로나19 시기 원격수업에 대한 교훈을 살펴보고 이후 교육환경의 변화와 이를 위한 과제를 짚어보고자 한다.팬데믹 기간에 체감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같은 책을 읽고 함께 감상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시대다. 독자들의 이런 마음을 알았는지 민음사에서 ‘읽는 사람’이란 인터뷰집이 출간됐다. 책엔 문학잡지 ‘릿터’에서 허윤선 작가와 배우, 영화감독, 가수 등이 독서에 대해 나눈 대화가 엮여 있다. ‘읽는 사람’이란 제목은 평범하면서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젠 읽는 사람이 일반적이지 않은 특별한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이 특별함은 권위적인 특별함과는 거리가 멀다. 책엔 읽는 사람이 줄어드는 시대에 여전히 읽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이들을 위한 이
“뭘 망설여 바보같이 답답해 너의 태도 그냥 좀 해도 돼 한 번쯤 미친 사람처럼" '‘어반자카파’의 ‘Get’이란 노래 중 일부다. 어린 시절 단순히 신나는 멜로디에 이끌려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학원 가는 길에 무겁던 발걸음의 무게를 덜어주던 이 노래가 이젠 한 소절 한 소절의 가사로 필자를 위로한다.긍정적이지 않아야 할 일까지 긍정적이란 지적을 받을 만큼 유난히도 밝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이끌리는 것에 마음을 주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원하는 것이니까.”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일단 저
열차의 침대칸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침대 옆 작은 창문으로만 시간과 바깥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깊은 잠이 들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낯선 곳으로 간단 설렘 때문인지 철길을 통과하며 생기는 크고 작은 소음과 진동이 불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12시간을 달려 마주한 풍경은 설원의 기차역이었다. 굽이굽이 철길을 달리고, 여러 이름 모를 지명을 지나 핀란드 북부 로바니에미(Rovaniemi)에 도착했다.오로라를 보지 않는 로바니에미 여행은 지루할지도 모른다. 낯선 나라, 처음 온 도시임에도 필자는 생생하게 살아있단
적막한 풍경은 되려 소리를 낸다. 오랜 고향의 정경도 그러하다. 그곳에선 해가 넘어가면 세상이 숨죽이는 소리가 금세 들려온다. 집집을 가르는 돌담 밑으로 풀벌레들이 작게 씨근거리고 그 위를 바람이 사붓이 돌아다닌다. 간간이 피어있는 가택의 불빛에선 희미한 인기척이 들썩거린다. 저물어 가는 풍경을 뒤로 한 채 수다스러운 고요가 내려앉는다. 그렇게 영원히 즐겁고 평안하리라던 마을의 밤이 찾아온다.한국어문 21 김민주
이번 학기 들어 독서에 다시 정을 붙이고 있다. 오래된 만큼 소중한 필자의 취미다. 그러나 한동안 바쁘거나 피곤하다는 핑계로 뒤로하기 일쑤였다. 필자는 취미가 많다. 각각의 취미에 깊은 조예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어도 저마다 소중하다. 시간과 체력이 한정적이기에 취미는 서로 교환관계를 가진다.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취미들은 잠시 미뤄야 한다. 선택의 기준은 사랑하는 정도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필자가 더 많이 사랑하는 것들로 일상을 채운다.독서는 의식적인 노력과 꾸준함이 필요한 취미다. 책은 영화처럼 관객을 결말까지 단
“시민이 접하는 정보는 기껏해야 피상적인 기성품이다. 사건의 진상을 보다 깊이 통찰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볼 가능성은 거의 공급되지 않는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보도가 공정하지 않고 정보가 은폐되다 보면 독자들이 피상적인 사실 이면에 어떤 힘이 작용하는지 알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프롬이 기대하는 새로운 사회는 시민들에게 실제적인 문제에 관련한 지식을 주고, 가장 중요한 사실과 참된 정보가 전파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숙대신보가 언론으로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진짜 문제를 잘 다루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