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전자상가의 어제와 오늘에 ‘접속’하다

2025-03-31     김선민 기자

용산역사박물관에서 오는 9월7일(일)까지 열리는 특별전시 ‘접속, 용산전자상가’는 용산전자상가의 역사와 추억의 전자기기를 소개한다.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에 자리한 용산전자상가는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거리다. 한때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상가였다. 지난 9일(일) 본지 기자단은 박물관에 방문해 용산전자상가가 성장한 역사와, 지금의 용산전자상가는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물이 흐르던 곳은 기술이 흐르는 거리로

▲용산청과물시장에 입점했던 신예상회의 라벨지다. 포도의 생산 정보, 중량, 등급 등이 담겨있다.

용산전자상가 일대는 원래 만초천이란 하천이 흐르던 곳이다. 전시장 입구를 지나자 만초천 하류가 현재 용산전자상가로 발전된 과정을 보여주는 연표가 한눈에 보였다. 해당 하천은 종로구에서 용산구를 지나 원효대교까지 흘러가며 한강과 합류하는 물길이었다. 하지만 인구 밀집으로 가정과 공장에서 생겨나는 폐수의 악취와 교통난이 심해지자 서울시는 만초천 하류 일대를 토지로 만드는 공사를 실시한다. 지난 1968년부턴 민간 기업들이 시공에 참여하고 해당 지역에서 10년간의 시장 운영권을 얻었다. 당시 부동산 임대업체인 나진산업이 건설한 나진시장을 중심으로 소비자와 상인이 모여들면서 용산청과물시장이 형성됐다. 전시실 한편에 진열된 청과물 상점의 라벨지와 수화물표는 용산전자상가 거리에서 농산물을 사고팔던 북적북적한 재래시장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도시 개발 정책과 지리적 이점이 맞물리며 청과물 시장터는 전자상가로 탈바꿈했다. 서울 내 농산물 유통의 70% 이상을 책임질 만큼 대규모 시장이던 용산청과물시장은 교통난 해소를 위해 1982년 서울시 강동구로 옮겨졌다. 빈 시장엔 세운상가를 포함한 현대식 전자상가들이 들어섰다. 세운상가는 청계천에서 가전제품부터 전자제품과 첨단 기기의 상가가 집중된 거리였지만 청계천 일대에 재개발이 시행되면서 용산청과물시장 부지로 이전됐다. 용산역과 가까워 전국으로 물건 조달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세운상가의 상인들이 입점하고 기존 청과시장 상가의 소유주인 민간 기업들이 건물을 건설하며 용산전자상가가 탄생했다. 청파로를 중심으로 나진상가, 원효상가, 선인상가, 전자랜드가 신축 또는 증축되거나 기존 건물을 보수해 세워졌다. 해외 관광객에게 국내 전자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맞춰 단지 건설이 마무리됐다. 전시실 벽에 걸린 1990년 2월24일 한국일보 신문에선 용산전자상가를 서울의 새 쇼핑 명소로 소개한다. 당시 용산전자상가가 받은 사회적 관심을 읽어볼 수 있다.

정보기술의 발달과 함께 국내에서 값은 최저, 규모는 최대인 용산전자상가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1990년 IT 기술의 열풍과 가전제품 보급의 대중화가 일어나며 용산전자상가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서울 올림픽 이후 문화 수준도 높아져 오디오나 게임기와 같은 취미용 전자제품의 소비도 증가했다. 용산전자상가는 1997년 IMF 외환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전자랜드에서 20년 가까이 중고 노트북 전문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우(63) 씨는 “실업자들이 퇴직금으로 피시방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전국적으로 불황기였으나 컴퓨터 시장의 확대에 따라 전자상가는 활성화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전자제품을 최저가로 살 수 있단 장점에 많은 소비자가 용산으로 모여들었다. 관람객 권진우(42) 씨는 “어렸을 때 컴퓨터 부품이나 게임을 사기 위해 용산전자상가에 자주 방문했다”고 얘기했다.

전자제품 보물창고

▲1980년대 국내 전자 기업에서 출시한 카세트 플레이어의 모습이다.

용산전자상가는 각종 전자제품을 총망라한 전자기기 유통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통신기기, 게임기, 컴퓨터 및 컴퓨터의 부품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전자제품을 취급했다. ‘전자제품은 용산으로’란 말이 등장할 정도로 전자제품이 전국으로 활발히 거래됐다. 두 번째 전시실로 이동하자 당시 용산에서 판매되던 카세트 플레이어, 디지털카메라, 닌텐도(Nintendo) 게임기 등의 전자기기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 모습으로 전시돼 있었다. 전시실에 설치된 스크린에선 과거 가전제품을 선전하던 광고를 시청할 수 있다. 영상에선 경제 호황 속 부상한 국내 전자기기의 발달이 엿보였다. 시대에 따라 점점 작아지는 음향기기는 현란한 색깔로 이목을 끌었다. 지금의 LG그룹인 금성사, 삼성사, 대우사에서 출시한 카세트 플레이어가 나란히 진열돼 있다. 용산전자상가에선 수입 오디오와 국산 오디오를 함께 비교하며 구매할 수 있었다. 2000년대엔 한 손으로 휴대할 수 있는 MP3 플레이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바뀌는 카메라도 눈에 띈다. 커다란 폴라로이드 즉석카메라와 여러 종류의 디지털카메라, 캠코더는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용산전자상가에 입점했던 매장 ‘컴케이스’에서 취급한 조립 컴퓨터다. 소비자는 원하는 부품으로 컴퓨터를 조립할 수 있었다.

컴퓨터의 대중화를 맞이하며 용산전자상가는 컴퓨터 시장의 중심이 됐다. ‘가장 빠른 컴퓨터’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린 복도를 따라 세 번째 전시장에 들어가면 옛날 컴퓨터들이 시선을 끈다. 먼저 하이텔 단말기가 보인다. 하이텔은 과거 인터넷 환경을 제공하는 PC통신 중 한국통신(현 KT)이 만든 서비스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PC통신이 확산했지만 1999년 초고속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하이텔 단말기는 종적을 감췄다. 추억의 때가 잔뜩 낀 조립 컴퓨터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원하는 부품을 직접 조합해 만드는 조립 컴퓨터는 많은 사람들을 용산으로 몰려들게 한 핵심 업종이었다. 용산의 조립 컴퓨터 매장에서 고객들은 완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최신 기종의 컴퓨터를 구매할 수 있었다. 컴퓨터 옆엔 플로피 디스크와 프로그램 CD가 있었다. 용산전자상가엔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산업도 발달했다. 저작권 인식과 제도의 미비로 불법 복제가 유행했지만 개발자들이 전자상가에서 사업을 펼치며 새로운 소프트웨어가 보급되는 계기가 됐다. 전시장 한쪽 벽면에 빼곡히 놓인 컴퓨터 관련 잡지를 읽다 보니 1980년대 후반부터 일어난 컴퓨터에 대한 대중의 높은 관심이 생생히 느껴졌다.
 

▲성은전자에서 제조한 게임기다. 비디오 게임 기업 닌텐도(Nintendo)에서 출시한 ‘패미컴’을 복제해 일명 ‘패미클론’으로 불리며 전자상가에서 판매됐다.

용산전자상가는 게임문화의 요충지였다. 오락실 시대를 지나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게임기가 용산전자상가에서 싼값에 거래됐다. 삼성과 현대는 해외 게임의 판권을 얻어 ‘겜보이’와 ‘컴보이’라는 이름의 게임기를 발매했다. 지문 자국이 남아 있는 투박한 게임 조종기에서 그 시절 비디오 게임을 즐긴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지막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 복도로 발을 옮기면 게임 ‘스타크래프트’와 한글 타자 연습 프로그램 ‘한메타자 베네치아’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구형 모니터로 스타크래프트를 직접 해보니 마치 전자상가 호황기 역사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컴퓨터 보급이 보편화되며 PC 게임이 발달하자 용산전자상가는 게임문화를 선도하는 시장으로 거듭났다. IMF 이후 등장한 피시방은 컴퓨터 게임의 확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초고속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스타크래프트가 크게 유행하며 용산전자상가는 e-스포츠의 거점이 됐다.

전자상가에 불어온 새바람 

▲적막한 나진상가 17동 1층의 모습이다. 대부분 온라인 매장의 물류창고로 운영 중이다.

오늘날 용산전자상가의 모습을 알아보기 위해 박물관에서 상가 거리로 향했다. 현재 전자상가는 나진상가, 원효상가, 전자랜드, 선인상가로 구성돼 있다. 조성 당시 가장 먼저 건설이 완료된 나진상가 앞에 도착하니 텅 빈 건물들이 보였다. 상가 안엔 먼지 쌓인 박스만 버려져 있을 뿐 사람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나진상가의 일부 구역은 기업에 매각돼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2024년 3분기 상업용부동산 통계지표에 따르면 용산전자상가 일대가 포함된 용산구 집합 상가 공실률은 37.5%에 달한다. 전자랜드, 선인상가엔 불 켜진 매장과 손님들이 있었지만 문 닫은 가게도 드문드문 보였다. 용산전자상가 쇠퇴의 주원인으로 온라인 쇼핑몰의 부상이 거론된다. 김 씨는 “컴퓨터 시장 자체는 축소되지 않았지만 유통시장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갔다”며 “전자상가의 상인 대부분은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장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을 전문으로 전자제품을 유통하는 업체도 나타났다. 1991년 선인상가에서 시작한 ‘컴퓨존’은 전자제품 종합 쇼핑몰로 조립 컴퓨터 업계에서 우위를 점한 회사다. 2020년엔 용산전자상가 상인들에게 컴퓨터 관련 시세 정보를 받아 제품군의 가격 비교를 제공하는 온라인 사이트 ‘다나와’가 출시했다.
 

▲전자랜드 본관 3층엔 여전히 조립 컴퓨터 매장이 간판을 밝히며 운영 중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전자상가의 모습도 달라질 전망이다. 2023년 6월 서울시는 ‘용산 메타밸리(Meta-Valley)’ 사업을 발표했다. 용산전자상가에 인공지능과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산업과 메타버스 신산업 기반의 창업 플랫폼을 조성하겠단 계획이다. 용산전자상가가 침체기를 극복하고 다시 도약하려면 상권의 정체성을 다시 확립해야 한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전통적인 유통 구조에서 벗어나 첨단기술 기반의 창업 생태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상업과 문화가 혼합된 복합 공간으로 만든다면 회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자기술 발전의 중심에서 용산전자상가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물이 흐르던 땅엔 대규모 청과물 시장이 세워졌고, 시장터 위엔 전국 각지에서 전자기기를 사러 몰려온 손님들의 발길이 뒤덮었다. 인공지능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되는 지금, 용산전자상가는 어떤 새 흐름 아래에 놓일지 궁금해진다. 본교 근처에 위치한 용산전자상가엔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며 전자기기를 팔고 있는 상인들이 존재한다. 수업을 마치고 전자상가로 걸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문헌
용산역사박물관. (2024). 용산전자상가 용산 역사문화 자료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