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으로

[편집장의 말]

2024-05-13     함채린 기자

인생에 자주 비유되는 운동 경기가 있다. 광활한 그라운드 위 모두가 약 7cm 크기의 작은 공을 바라보는 스포츠, 바로 야구다. 필자는 야구를 보며 본지 활동을 떠올렸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 활동과 야구는 닮은 점이 많았다.

타석에 선 타자는 어떻게 날아올지 모르는 공을 적절한 시점에 좋은 위치로 쳐내야 한다. 방망이를 너무 이르게 휘둘러서도, 늦게 힘을 주어도 안 된다. 모든 것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안타를 만들 수 있다. 취재 과정도 그렇다. 어떻게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취재원의 응답을 기다리거나 다른 인터뷰이를 하염없이 찾아 헤매곤 한다. 그러나 안타가 아니더라도, 잘 맞은 공 하나는 다른 선수가 홈으로 들어와 점수로 이어지는 희생플라이 타점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취재에서도 새로운 아이템이나 인터뷰이를 찾을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아무리 기록이 좋은 선수라도 매일 최고의 성적을 낼 수는 없다. 팀을 매일같이 승리로 이끌어왔던 선수도 어느 날엔 뼈아픈 실책에 자책하기도 한다. 그러나 직전의 실수에 매몰돼있어선 안 된다. 재빨리 잊고 다음 플레이에 집중해야 한다. 본지 활동도 마찬가지다. 아쉬운 기사는 뒤로하고 더 나은 다음 기사를 만드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미련은 도움 되지 않는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란 말은 야구의 특성을 설명하는 말로 가장 자주 쓰일 것이다. 이마저 마감의 특성과 맞닿아있다. 9회 말,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방심할 수 없는 것처럼 신문도 인쇄소에 넘어갈 때까지 의심에 의심을 거듭해야 한다. 경기에서도, 신문에서도 사소한 실수가 중대한 과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구단에 속한 선수들은 시간이 지나면 은퇴 시즌을 맞는다. 관중은 그간의 기록은 뒤로하고 은퇴를 맞이한 선수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 시간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새 수료를 앞둔 필자는 수많은 관중 앞에 선 유명 선수는 아니다. 다만 자신만을 위한 관중이 되어 스스로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그동안의 수고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