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학회가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을 중심으로 1908년에 설립된 한글학회는 지난 100년 동안 우리한글을 지키는 보루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새 정부의 ‘영어 공교육 강화’ 선언을 계기로 상대적으로 한글이 관심 밖으로 밀리며 후원금이 뚝 끊겼고, 당장 진행 중인 ‘한글학회 100돌 기념사업회’ 준비도 빚을 내서 마련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영어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새 정부의 선언은 그렇지 않아도 후끈하던 대한민국의 영어 열기를 더욱 가열시켰다. 심지어 일부 초ㆍ중ㆍ고ㆍ대학의 입학식이 영어로 진행되는 희귀한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아무리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최근의 세계적인 추세라지만, 외국 사람들도 인정하고 있는 한글이 정작 국내에서는 영어에 밀려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은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한글이 겪는 수난이 단지 의사소통수단으로써 글로벌화 되는 ‘유행’에 따르는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이는 빠르게 확산되는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민족 정체성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중요한 ‘신호’로 봐야한다. 실제로 1970년도에 8천여 종이 었던 세계의 언어는 불과 20여년 만에 2천여 종으로 줄어들었다. 이런 감소 추세를 감안할 때 비교적 ‘소수언어’는 한 순간에 소멸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현재 많은 외국 대학에서는 한국어 및 한국 역사학과목이 개설하는 일이 점차 늘어나고 있고, 한글 디자인의 옷이 인기를 얻는 등 세계 속에서의 한글의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렇게 한글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데에는 한글을 100여 년 동안 발전시키고 지켜온 한글학회의 중요한 역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조국이 말살되고, 우리 언어가 사장될 위기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한줄기 희망을 갖고 우리말을 지켜온 한글학회. 이들이 위협받는 받는 일은 이제 우리 모두의 정체성 뿌리까지 흔드는 일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