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배심제도』는 캐나다인이며 현재 미국 듀크대 로스쿨(Duke Law School) 교수인 닐 비드마르(Neil Vidmar)가 세계 여러 나라의 배심제도에 관한 훌륭한 논문 13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이 책의 글쓴이들은 각 국에서 배심제도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 낸시 진 킹 (Nancy Jean King)과 스티븐 타만(Stephen C. Thaman)을 위시하여 가히 사계의 석학들이 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책의 구성은 총 13장으로 돼 있으며, 내용은 영국, 미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스페인과 러시아, 일본 등의 배심제도,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의 민사배심제도에 관한 것까지 다루고 있어 이 한권의 책으로 여러 나라의 배심제도를 두루 섭렵할 수 있다.

제1장과 제6장, 제13장은 편저자인 닐 비드마르가 직접 쓴 부분으로 역사적, 비교법적 관점에서 영미법국가의 배심제도와 캐나다의 형사배심제도 그 외 여러 나라의 제도를 개관한 글이다. 제2장부터 제12장까지는 각 국의 배심제도의 발전과정, 기능, 제도의 형태 및 찬반론 등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그것을 다시 한국의 비교적 젊은 현직 판사들이 한국어로 번역하여 시의적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배심제도가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제도인데다 국내에 배심제도에 관한 책이나 자료가 많지 않은 터에 한국어판인 『세계의 배심제도』는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책으로 여겨진다.

19세기 말, 우리나라에서 재판소구성법이 제정돼 근대적 사법제도가 도입된 이래, 우리 사법제도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직업법관이 소송을 심리하고 종결하는 재판제도’였다. 1990년대 후반부터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열화와 같은 사법개혁의 요구로 표출되면서 이러한 ‘직업법관’만에 의한 재판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아울러 국민이 재판에 참여하고자 하는 요구가 꾸준히 제기됐다. 그리하여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배심제 또는 참심제의 도입이 주장됐다. 드디어 2008년에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도 형사재판에 한하여 다소 변형된 형태의 배심제도가 실시되게 됐다.

주지하다시피 배심제란 일반국민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재판에 참여해 직업법관으로부터 독립해 유ㆍ무죄의 판단에 해당하는 평결을 내리고 법관은 그 평결에 기속되는 제도이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이 제도는 영국에서 기원한 제도로서 식민 지배를 통하여 미국에 전파됐고 오늘날 세계 50여개 국가에서 실시되고 있다.

또 이와 유사한 것으로 보이는 참심제는 일반국민인 참심원이 직업법관과 함께 재판부의 일원으로 참여해 직업법관과 동등한 권한을 가지고 사실문제 및 법률문제를 판단하는 제도이다. 참심제는 13세기경 스웨덴에서 처음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현재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노르웨이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이른바 국민참여재판은 우리 현실을 고려해 배심제와 참심제의 양 제도를 적절하게 혼합해 수정한 독특한 제도이다. 국민참여재판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법학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배심제도에 관한 지식을 넓혀야 한다. 여러 나라의 제도들을 평면적 비교가 아닌 다면적 또는 심층적 연구를 통해 제도가 가지는 장단점을 숙지해야 한다. 국민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 제도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며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신뢰도를 제고시키기 위한 궁극적 목적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2월 1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처음으로 강도상해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열려서 검사와 변호인이 12명의 배심원단을 설득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는 뉴스가 있었다. 어려운 법률용어를 피하도록 노력했고 파워포인트와 사진 자료 등을 사용해 사건개요를 쉽게 설명 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평가를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제도가 우리 문화 및 사회 속에서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며, 더 확대ㆍ발전시킬지 중단할지도 두고 볼 일이다. 가까운 일본에서 1928년부터 15년간 배심제를 시행하다 중단한 바 있고 내년부터 다시 시행하려고 준비 중인 것을 보면 배심제의 정착이 만만치는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살피건대 이 책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한 사람의 저자가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맥락이 일관되게 이어지지 않아 다소 어수선한 느낌이 있다. 의미내용의 전달이 단어선택에 따라 좌우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판결문을 쓰는 판사ㆍ법률가들의 번역의 한계도 무미건조한 느낌을 더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각국의 배심제도가 전통적인 영국의 배심제도와 대체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각 나라의 재판문화적 배경이나 발전과정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점을 잘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법률용어가 섞여 있기는 하지만 어려운 전문용어 가 아니어서 그런대로 이해하기 쉽다. 간결하고 평이한 문체에 비해 그 내용은 단순히 제도의 설명이나 절차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배심제도의 문제점이나 쟁점들까지 지적하고 있기 때문에 ‘배심제도란 무엇인가?’ 또는 ‘형사사건뿐만 아니라 민사사건에도 배심제도가 가능한가?’ 하는 초보적 의문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에서부터 학문적인 연구, 예컨대 여러 유형의 배심제도에 관한 비교법적 연구의 목적으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영란(법학 전공) 교수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