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끔찍한 잔혹범죄는 종종 보는 이들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가족을 살해하고, 아동을 성폭행하면서도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일부 범죄자들을 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정남규, 유영철 등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연쇄살인범이 세간의 관심이 되고 지난 6월 사이코패스를 다룬 영화 ‘검은집’이 개봉하면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됐다.

 

‘사이코’도 ‘성격장애’도 아니다


사이코패스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정신이상자’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도 하나하나 뜻을 풀어보면 ‘정신의 병(Psyche는 정신, Pathos는 고통)’으로 분석된다. 또한 잔혹한 범죄가 발생하면 ‘미치광이 살인마’ ‘광기의 범죄자’라고 표현하는 언론 역시 사이코패스가 정신이상자와 같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는 ‘사이코’와 엄연히 다르다.


임상심리자나 범죄연구자는 사이코패스는 절대 정신이상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이코패스가 전부 살인범은 아니며 고도의 지능범죄인 금융사기ㆍ횡령 등을 벌이는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도 많다. 이들은 인식 능력이 부족하거나 현실감각이 떨어지지 않으며 환상이나 망상도 겪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이성적이다. 또한 자신이 저지르는 잔혹 행위가 어떤 의미이며 무슨 결과를 불러올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범죄자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반사회적성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와도 다르다. 반사회적성격장애가 어떠한 행동양식에 따른 패턴으로 분류되는 장애인데 비해 사이코패스는 성격 자체에서 나타나는 특이점을 가리킨다. 또한 반사회적성격장애는 교화 가능성이 있지만 사이코패스는 치료법이 미비하다. 현재 반사회적성격장애는 전 인구의 4%, 사이코패스는 1%라고 보고 있다.


‘사이코’와 ‘사이코패스’는 범죄의 판결에도 다른 영향을 미친다. 재판에서 피의자의 범행 당시 정신상태가 비정상적이었다고 주장해 죄를 면해주는 ‘정신장애 항변’에 사이코패스는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
영화 ‘양들의 침묵’ ‘텍사스 전기톱연쇄살인사건’ 등의 모델이 된 ‘에드워드 게인(Edward Gein)’은 수많은 여성들을 살해했으며 이들의 피부를 벗겨 옷을 만들어 입고, 인육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에드워드 게인의 범죄는 여성에 대한 증오로 인한 ‘정신분열증’ 때문이라는 판정을 받았고, 교도소 대신 정신병원에 수감됐다. 그러나 잘생긴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여성에게 인기가 높았던 미국 희대의 살인마 ‘테드 번디(Ted Bundy)’는 ‘사이코패스’로 진단됐고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정상적인, 그러나 작위적인

그렇다면, 사이코패스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사이코패스가 갖는 주요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꼽는다. 사이코패스는 주로 재치 넘치고 말을 조리 있게 한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면 말에 깊이가 없고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한 자기중심적이며 과장이 심하다. 따라서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으로 오해되기도 한다. 후회나 죄의식이 결여됐다는 것도 특징이다. 절도행각을 벌이다 피해자를 찔러 중상을 입힌 한 사이코패스는 ‘그자는 병원에 편안하게 누워 몇 달만 보내면 되지만 난 감옥에서 썩고 있다. 난 그 사람에게 잠시 휴식을 주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부인을 살해한 사이코패스는 아내를 잃은 본인이 오히려 ‘희생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거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하다. 이들은 수감 중에도 교정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듯한 ‘연기’를 통해 가석방되는 경우가 많다. 또 식은땀이 난다던지 심장이 쿵쾅거리는 등 공포와 불안에서 느끼는 감정을 경험하지 않는다. 경기대학교 이수정(범죄심리학 전공) 교수는 “사이코패스와 직접 대화해보면 일반인과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말도 조리있게 잘하고 사회성 있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연쇄살인범 유영철을 심문한 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는 “유영철과 이야기만 나눴을 때는 그가 사이코패스인지 판별할 수 없었다.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기 전까진 이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이코패스가 아닌 사람도 이런 특징을 보일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이코패스는 수많은 특징이 함께 모여 나타나는 일종의 증후군이기 때문에 정밀한 진단이 필요하다.


현재 사이코패스를 진단하는 방법으로는 로버트 D. 헤어(Robert D. Hare)박사가 개발한 ‘PCL-R(Psychopath Checklist-Revised)’이 있다. 이 검사는 ‘자기의 가치’ ‘병적인 거짓말’ ‘죄책감의 결여’ ‘공감의 부족’ 등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나타내는 20개의 문항으로 구성됐다. 40점 만점에 30점을 넘으면 사이코패스로 진단한다. 실제 진단 결과 교도소 수감자 중 약 20% 정도가 사이코패스로 분류됐으며 중범죄자들의 경우 절반 이상이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았다. 유영철 역시 38점을 받아 사이코패스로 진단됐다.

 


한 번 사이코패스는 영원한 사이코패스?


문제는 사이코패스의 완전한 치료가 거의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미국 브르크하멜 국립연구소의 연구결과 이들은 감정을 지배하는 전두엽 기능이 일반인의 15%밖에 되지 않고 공격성을 억제하는 분비물인 세로토닌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치료와 교화가 쉽지 않다.


심리치료 역시 효과가 없다. 심리치료의 기본 전제는 환자 스스로가 심리적 문제를 느끼고 도움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내면세계에 스스로 만족하며 사회적 기준에 맞춰 본인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치료프로그램에 들어가면 스스로 내부에서 더욱 단단한 방어벽을 구축한다. 이들에게 치료가 효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면 법원명령이나 가석방 허가를 받기 위해 치료된 ‘시늉’을 하는 것일 뿐이다. 이수정 교수는 “범죄사이코패스는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며 “따라서 해외의 경우에 이들을 격리시키려 노력한다. 독일의 경우 사회보호법을 적용해 격리시키며, 미국의 경우 성범죄자 사이코패스에 대해 이같은 법을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치료는 오히려 또 다른 범죄에 악용된다. 사이코패스의 경우 치료공동체 프로그램을 마친 후 강력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일반인에 비해 거의 4배나 높았다.

 

최근 많은 영화와 소설의 모델이 되고 있는 사이코패스. 그러나 이들은 단지 허구속의 캐릭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는 실존 인물이다. 우리가 스친 100명 중 한 명은 어쩌면 사이코패스였을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