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는 온통 모래뿐인 곳에 한 남자가 갇혔다. 7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갇혀있던 그에게 탈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는 결국 모래 구덩이에 남았다. 무슨 이유일까.

아베 코보의 소설『모래의 여자』를 원작으로 한 히로시 데시가하라의 영화 <모래의 여자>는 한 남자의 실종 사실을 알리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남자는 주인공 니키 준페이로, 곤충채집을 위해 찾아간 모래마을에서 주민들의 계략으로 모래 구덩이 속에 지어진 집에 갇힌다. 그 집에 있던 과부와 함께 살면서 주인공은 탈출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고, 끝내 굴복한 듯 살아가지만 내면엔 항상 탈출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우연히 사다리를 두고 가 탈출할 수 있게 되지만 그는 탈출하지 않는다.


여기서 주인공이 갇힌 모래 구덩이는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이며, 흘러내리는 모래는 주인공을 가두고 억압하는 절대적인 단절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모래가 만든 단절과 억압에 저항하다 결국 굴복하고, 더 나아가 모래를 공기처럼 당연한 존재로 여긴다. 속박의 장소였던 모래 구덩이가 어느새 그에게 일상적인 공간이 된 것이다.


주인공에게 모래 구덩이는 타인에 의해 갇혀있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먹으면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공간이 됐다. 이러한 주인공 내면의 변화가 모래 구덩이로부터의 탈출을 미룬 이유이다. 또한 그가 모래 구덩이에서 우연히 물을 고이게 하는 장치를 만든 것도 그를 모래 구덩이에 머무르게 했다. 물이 귀한 모래마을에서 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칭송받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머릿속에는 탈출해야겠다는 의지가 사라진지 오래다. 오랫동안 탈출을 열망하며 몸부림치던 그가 어느새 모래를 일상의 단편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새로운 만족을 발견하면서 탈출에 대한 소망도 잊은 것이다.


이야기의 초반에서 모래는 주인공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래를 보면 현실의 지리멸렬한 일상에서는 접할 수 없던 자유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래 구덩이에 갇히면서 모래는 차츰 동경의 대상이 아닌 일상 속의 존재가 됐다. 우리도 이런 주인공처럼 동경하는 곳을 찾아 가지만, 곧 그곳을 익숙하게 여겨 또 하나의 일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일상을 벗어나고자 또 다른 동경을 쫓아간다. 우리가 이렇게 끝없이 열망하는 동경이란, 바깥의 어딘가가 아닌 우리 내부에서 변화하는 세계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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