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0시 36분. 서울로 가는 호남선 상행열차는 긴 추석 연휴를 마치고 다시 일터로, 학교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빽빽했다. 황금 벼가 바람결을 따라 한 방향으로 누운 듯 대부분의 좌석들은 고단한 사람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일제히 뒤로 쓰러져있었다. 여기에 통로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바쁜 입석 승객들의 모습까지 어우러지니, 과연 ‘귀성 열차’다운 진풍경이었다.


다들 조금이라도 눈 붙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렸다. 초면인듯한 아주머니 두 분의 대화다. “올 추석 참 길었죠. 자녀분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셨어요?” “길면 뭐합니까, 사는 이야기, 힘든 이야기 다 털어놓을래도 다들 제 짐 짊어지고 돌아온 길이니 웃으며 바라볼 밖에요.” 듣자하니 한 아주머니의 가족은 어려운 집안형편 상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져 사는 모양이었다. 명절에만 가족 모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 묻고 싶은 말이 많아도 가족들에게 짐이 될까봐 선뜻 묻지 못한다는 것이 아주머니의 하소연이었다. “집값이라도 떨어져서 다같이 살 집 좀 장만하면 좋으련만…….” 아주머니의 사연은 긴 밤이 다가도록 끝나지 않았다.


이번 추석은 더웠지만, 을씨년스러웠다. 남부 지방을 강타한 태풍 피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축산 농가들의 우울함, 가라앉은 경제로 인한 살림살이의 어려움 등으로 분위기가 차가웠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대선을 앞둔 대선주자들의 ‘추석맞이 민심잡기 행보’는 무척 바빴으리라 본다. 독거노인 만나랴, 재래시장 상인들 만나랴 동분서주하는 그들의 모습은 신문 지면에도 매일같이 나오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들이 ‘서민’이라 부르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각 후보들이 서민을 살리는 길이라며 내건 공약들 가운데에는 커다란 청사진만 제시하는 ‘단순 선언’식 혹은 지나친 선심성 공약, 또는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기인한 공약 등 실질적 측면과 맞지 않은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대선철이건 핵심 의제가 경제 아닌 적이 있었겠냐마는 이번 대선판은 유독 경제개혁의 바람이 거세다. 후보들이 앞 다퉈 내놓은 각종 경제 공약들이 진정 국민 모두를 위한, 끊임없는 연구의 결과물이길 바란다. 당장의 한 표를 얻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만든 공약은 자칫 국민에게 큰 짐이 될 수 있다. 국민을 상대로 한 ‘희망고문’은 더는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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