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세토오페라단 단장 강화자(성악 68졸) 동문

지난 8월 31부터 9월 9일까지 인천에서는 ‘인천 세계오페라페스티벌’이 열렸다. 유럽의 정상급 오페라단인 체코의 프라하 스테트니극장 팀과 이탈리아의 제노바 카를로 펠리체 오페라극장 팀이 참여하는 이번 페스티벌을 지휘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숙명인 강화자(성악 68졸) 동문이다.

<라 트라비아타> 공연 준비가 한창이던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이번 '인천 세계오페라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이자 베세토오페라단 단장으로 활약 중인 강 동문을 만났다. 문화의 혜택이 소외된 곳에 오페라를 보급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페스티벌의 기획에서 참가 팀 초청까지 맡아 행사를 진행 중인 강 동문의 목소리는 밝았다.

 


이번 페스티벌 반응이 어떤가요?
기대 이상이에요. 객석점유율은 95%를 넘겼고, 막과 막 사이에 자리를 뜨는 관객도 하나도 없어요. 또 커튼콜 때 기립박수가 나오거나 ‘브라보’를 외쳐주시는 관객 분들이 많아서 뿌듯합니다.

현재 ‘인천 세계오페라페스티벌’의 조직위원장 외에도 베세토오페라단을 설립해 단장을 맡고 계세요. 성악을 전공하신 후 연출가에서 오페라단을 설립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숙명여대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에 오페라를 보곤 했어요. 티켓을 살 돈이 없을 때는 3달러짜리 6층 객석 표를 사 가며 거의 매일 공연장을 찾았죠. 객석이 너무 높아 무대가 거의 잘 보이지 않았는데도 악보에 가득 표기를 해가며 행복을 느꼈던 그 때, 무대에 서는 것보다 오페라 연출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온 뒤 오페라 워크샵을 우리 학교와 연세대학교에서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저의 스승이신 김자경 선생님께서 직접 제안하셔서 김자경오페라단의 단장을 맡게 됐습니다. 김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나도 스스로 오페라단 운영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 베세토 오페라단을 설립하게 된 겁니다.

오페라단 이름인 ‘베세토’는 어떤 뜻을 담고 있나요?

베세토오페라단의 ‘베세토’는 동북아를 거점으로 비상하고자 베이징, 서울, 도쿄의 앞 글자를 땄습니다. 그러나 이젠 동북아를 넘어서 유럽을 포함해 세계로 나아가는 오페라단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미 독일이나 체코 프라하에서 정부의 초청받아 공연을 여러 번 한 적도 있고요.

동북아를 비롯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베세토오페라단의 활동을 보면, 우리 학교에서 강조하는 리더십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 동문의 리더십에 특별히 영향을 주신 교수님이 계신가요?
어느 한 교수님의 영향이라고 꼽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모든 교수님들께서 시험을 볼 때 노래를 하면 ‘너는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다’ ‘세계적으로 나갈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다’면서 격려해주셨어요. 이런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저의 리더십을 키운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제로 ‘난 한국에서만 머물지 말고 세계적으로 나가야겠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됐거든요.

대학생 때 학교 생활에 관련된 추억이 궁금합니다.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한 기억도 나지만 기숙사에서의 추억이 생각나네요. 기숙사는 식사를 정해진 시간에만 할 수 있잖아요? 밤이 되면 배가 고픈데 10시 이후엔 출입을 할 수 없으니 친구들과 사감 선생님 몰래 두레박으로 음식을 시켜 먹곤 했죠. 사감 선생님이 아주 무서우셨거든요.(웃음)
학교 얘기를 하다 보니 또 생각나는 게 있네요. 처음에 소프라노로 활동하면서 ‘숙대에서 용났다’는 말을 들었어요. 당시에는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동문이 별로 없었고. ‘숙명여대’하면 ‘현모양처’ 이미지가 강했거든요. 제 칭찬이라고 해도 모교를 비하하는 말에 어찌나 기분이 나쁘던지요. 그래도 이경숙 총장이 온 뒤로 학교가 많이 세계화되고 발전하면서 ‘현모양처’같은 인식도 사라져 자랑스럽습니다.

민간 오페라단은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기 때문에 운영이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베세토오페라단의 공연은 객석 점유율이 90% 대에 이르고 있는데, 베세토오페라단만의 인기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최선을 다해서 고객을 만족시키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좋은 공연을 위해 가장 중요한 좋은 예술가 선정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특히 다른 오페라단과 차별되는 것은 단장인 내가 주연에서 연출까지 경험해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직접 경험해봤기 때문에 무대 세트 설정에서 커튼콜 연출, 의상까지 세심히 신경쓰니 좋은 무대가 될 수밖에 없죠.

베세토오페라단은 ‘문화 나누기’ 운동을 통해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 이웃을 공연에 매번 초청하고 있.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요새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청소년들의 탈선이 늘고 있죠? 하지만 정신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는 이런 공연을 자주 접하면 탈선할 수 없어요.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교양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되구요. 그래서 어릴 적부터 보면 좋은데 불우한 사람들은 접하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장애인들이나 소년소녀가장을 초청하고 있어요. 오늘 공연에도 올 거예요.

오페라단의 단장으로서,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세요?
당연히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좋아할 때죠. ‘오늘 공연 멋있었다’ ‘좋은 공연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거나 관객들이 환호를 보내주실 때 가장 큰 힘을 얻어요. 공연을 준비해서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산고의 고통은 다 잊혀지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강 동문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소년이 와서 보든 소녀가 와서 보든 할머니가 와서 보든 우리 오페라를 즐겁게 보면 나한테는 더없이 좋은 일이예요. 그래서 최대한 노력해서 다양한 레파토리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내 바람이예요.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행복함을 느끼고, ‘아 오페라가 이런 것이구나’ ‘오페라가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고 멋있었다. 또 보고 싶다’하는 생각을 하면 성공 아니겠어요.

꿈을 이루기 위해 준비중인 숙명인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최선을 다하라는 말과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세요.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도 운명적으로 만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최선을 다해 그 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세요. 자신의 모토를 ‘최선을 다하자’고 정하는 거예요. 누구나 다 하는 얘기일 수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꿈을 꼭 가지는 것도 중요해요. 난 초등학교 때 꿈이 콩나물 장사를 해서 불쌍한 아이들 돕는 거였어요. 그러다 꿈이 점점 자라나 여기까지 온 거구요. 베세토오페라단도 처음엔 동북아를 목표로 시작했는데 베세토에서 머무르지 않고 유럽으로 가잖아요.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할 때가 올거예요, 그 때까지 꿈을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세요!

“이제 ‘인천 세계오페라페스티벌’을 매년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 내년에는 더 많은 나라들을 초청하려고 생각 중이고……. 그 전에 11월에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지 10년을 기념하는 <아이다> 공연을 제가 맡아서 하게 됐구요. 내년 5월이 푸치니 탄생 120주년이라 ‘푸치니 탄생 기념 페스티벌’을 기획중이예요.”
인터뷰 중에도 끊임없이 휴대폰이 울리던 강 동문은 3년 뒤까지 스케쥴을 잡아놓은 듯 바빠보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계획을 속사포처럼 쏟아놓는 강 동문에게서 ‘꿈을 가진 사람’만의 반짝이는 눈빛을 느낀 것은 기자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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