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가 43일 만에 일단락됐다. 지난 40여 일 간 그들의 안전한 석방을 기다리며 온 국민이 마음을 졸였다. 그들이 무사히 고국의 땅을 밟게 된 것은 천만 다행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과 네티즌이 이번 인질 사태를 비판하면서 반(反) 기독교적 여론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 비판하기 전에 근본적으로 이들이 왜 인질 사태에 휘말리게 됐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가장 부족했던 점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이해’였다. 우선 타 지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전쟁 중인 국가이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이 정부에서 경고하는 위험 지역임을 알면서도 이를 무시하고 떠났다.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무법천지인 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탈레반의 출현이 잦은 카불~칸다하르 도로를 고급버스로 이동했다는 점은 자신들의 안위를 돌보지 않은 경솔한 행동임을 반증하고 있다. 또 이슬람 국가에서는 선교 자체가 범법 행위이다. 그것이 비록 봉사의 명목이라 할지라도 떠나기 전 충분한 학습과 사전준비는 했어야 한다. 다음은 타 종교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그들에게 기독교가 소중하고 옳은 것처럼 다른 종교인들에게도 자신의 종교는 가장 옳고 소중하다. 종교는 이해와 인정의 대상이지 자신의 종교를 전파해야하는 강요의 대상은 아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이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안다는 것은 정보를 숙지하고 있는 정도겠지만, 이해한다는 것은 정보에 대한 해석 뿐 아니라 마음으로부터의 인정도 포함돼 있는 것이다. 피랍자들에게 아프가니스탄이 전쟁국가이며 이슬람국가라는 것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었는지, 단순히 알고 있던 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봉사든, 전도 활동이든 사랑을 나누기 위해 떠나는 젊은이들의 도전정신은 아름답다. 또 앞으로도 수많은 대한의 청년들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세계로 뻗어나갈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이해 없이 무모한 도전정신만으로 떠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태로 우리 민간 차원의 구호가 중단됐다. 정말 봉사하고 싶은 이들마저 가로막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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