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하!’ 펭수 하이(Hi)의 준말로, 한국교육방송공사(Korea Educational Broadcasting System, 이하 EBS)에서 제작한 TV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의 인사말이다. 최근 자이언트 펭TV의 주인공 ‘펭수’의 인기가 전 연령대에서 뜨겁다. 세대를 가리지 않고 화제가 된 펭수의 인기 요인은 거침없는 돌직구 발언이다. EBS 사장의 이름을 당당하게 부르거나 EBS 인기 캐릭터 ‘뽀로로’를 넘어서겠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한다. 기존의 EBS 방송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캐릭터의 등장에 대중은 열광했다. 펭수의 인기 요인으로 꼽힌 솔직함과 건방짐을 넘나드는 감정표현은 일종의 ‘B급 문화’이기도 하다. 

‘직설적임’ ‘자극적임’ ‘허술함’을 표방하는 B급 문화가 점차 대중화되고 있다. 자이언트 펭TV와 같은 영상 미디어(Media)뿐만 아니라 제품 상표와 광고에서도 B급 문화를 활발하게 찾아볼 수 있다. 바야흐로 찾아온 B급의 시대를 함께 만나보자.

 

일상과 섞인 비주류
‘B급’ 문화는 A급이 될 수 없는 비주류 문화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B급이라는개념은 할리우드의 ‘B급 영화’에서 출발했다. 할리우드에선 예산을 차등 분배하기 위해 A급 영화와 B급 영화로 영화 스튜디오를 분리했다. 저예산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B급 영화는 A급 영화에 비해 다소 저급하고 수위 높은 연출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B급’은 ‘이류’ ‘비주류’를 뜻하는 개념이 됐다. 본교 김지은 홍보광고학과 교수는 “B급 문화의 시작은 등급 매기기가 맞다”며 “현재는 A급에 뒤떨어진다는 의미를 넘어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현재 활발하게 유통되는 B급 문화는 대부분 인터넷 밈(Internet Meme)에서 유래한다. 인터넷 밈은 사진이나 유행어의 형태로 확산돼 사회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은 행동 양식을 의미한다. 주로 청년들이 이용하는 소규모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며 인터넷의 특성상 어느 한 곳에서 인기를 끌면 빠르게 유행한다. 김 교수는“인터넷 밈은 결국 인터넷과 밀접한 세대에서 주로 향유하는 문화이다”며 “ 때문에 전통 미디어 및 공론의 장에서 사용되지 않는 비주류이자 B급으로 규정됐다”고 인터넷 밈이 B급 문화에 속하는 이유를 짚었다.

인터넷 밈을 이용한 B급 문화의 인기는 식품유통업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팔도 비빔면 35주년 한정판으로 출시된 비빔면 ‘괄도 네넴띤’은 원래 글자를 모양이 비슷한 글자로 바꿔 쓰는 인터넷 밈을 제품명에 활용한 예시다. 대학교를 ‘머학교’, 멍멍이를 ‘댕댕이’로 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괄도 네넴띤은 한정수량 500만 개가 한 달 만에 완판되며 인기를 증명했다.

B급 문화를 반영한 마케팅(Marketing)으로 실질적인 매출 상승을 이끈 사례는 또 있다. CU편의점을 운영하는 BGF 리테일과 디저트 전문 회사 피오레의 합작으로 출시된 ‘ㅇㄱㄹㅇ ㅂㅂㅂㄱ' 쇼콜라생크림케이크’는 인터넷 유행어인 ‘이거 레알(Real) 반박불가’의 초성을 이용한 제품명이다. 연구·개발과 품질관리를 맡은 강창오 유한회사 피오레 실장은 “해당 유행어의 ‘논리적으로 완벽하여 반박할 수 없다’는 뜻에 주목했다”며 “피오레의 우수한 제품 품질과 기술력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해 제품명으로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ㅇㄱㄹㅇ ㅂㅂㅂㄱ 쇼콜라생크림케이크는 출시 3개월 만에 CU 편의점 디저트 부문의 매출을 3배 이상 올렸다. 이에 강 실장은 “편의점은 특히 젊은 층의 이용도가 높은 편이다”며 “인터넷 유행어를 자주 사용하는 청년층을 공략한 마케팅 전략과 제품 품질의 합작품이다”고 매출 이유를 분석했다.

 

B급 광고, 대중에 녹아들다
광고계에서 B급 문화는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의 요소로 환영받는다. 바이럴은 바이러스(Virus)와 구두(Oral)의 합성어로, 인터넷 매체를 통해 상품 또는 서비스를 바이러스처럼 빠르게 퍼뜨려 홍보하는 마케팅이다. B급 문화는 격식은 없지만 가볍고 재치 있는 유머를 주로 다루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기에 용이하다. 김 교수는 “소비자는 재미있는 콘텐츠 자체에 반응한다”며 “A급 문화보다 자극적인 B급 문화는 소비자의 눈길을 끄는데 용이하기 때문에 요즘의 광고시장에서 큰 경쟁력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제주삼다수’는 최근 유튜브(Youtube)에 ‘깨끗한 물을 찾아서, 수(水)타트랙’이라는 바이럴 마케팅 광고 영상을 게시했다. 영화 <스타트렉(Star Track)>을 패러디한 해당 광고는 가뭄으로 물이 고갈된 행성에 사는 외계인 ‘닥터 수(水)트레인져’가 인공지능 ‘춘식스’와 함께 ‘우주에서 가장 깨끗하고 거대한 정수기’가 있다는 제주도를 방문하는 내용이다. 광고는 제주도의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물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두 배우의 모습이 유쾌하게 그려진다. 유명 배우가 등장해 다소 잔잔한 문구로 제주삼다수를 소개하는 이전의 광고와는 확연히 다른 방향성이다. 제주삼다수를 유통하는 류훈택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마켓기획팀 과장은 “밀레니엄 세대와 소통해 브랜드와의 친근감을 높이려는 목적이었다”며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공공기관도 B급 문화를 이용한 홍보 전략에 나섰다.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에서 제작하는 기관 및 정책 홍보물은 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충주시청, 질병관리본부처럼 B급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여 공공기관의 분위기를 바꾼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김 교수는 “공공기관 홍보 양상의 변화는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기관의 의도를 전달하려는 노력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충주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이하 SNS)를 통해 공공기관에서 이뤄지는 보수적인 홍보 이미지를 바꾼 예시다. 충주시청에서 관리하는 충주시 SNS는 국가기관임에도 주류적인 A급 분위기를 탈피했다. 과거 충주시청 소속 충주시 SNS 담당자였던 조남식 충주시 대소원면 주무관의 홍보물은 기본 도형과 원색 등 조악한 디자인과 패러디로 유명세를 탔다. 2년간 꾸준히 B급 감성으로 선보인 홍보물은 충주시 SNS 파급력의 큰 성장을 불러왔다. 조 주무관은 B급 감성의 홍보물 제작 의도에 대해 “충주라는 도시를 전국에 알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홍보와 차별화가 필요했다”며 “상향평준화된 완성도의 홍보물 속에서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 의도적인 완성도 하향을 실천한 결과다”고 말했다. 

질병관리본부는 B급 문화를 활용한 광고로 기관에 대한 국민인식을 제고하고 있다. 국민소통 업무를 맡은 최유석 질병관리본부 위기소통담당관 주무관은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 무너진 기관 신뢰도를 회복하고 딱딱하고 어려운 감염병 및 질병 정보를 국민 눈높이에 맞춰 소통하려는 시도다”고 B급 문화의 광고 도입 의도를 설명했다. 지난 7월 게시된 옥외광고는 드라마 <야인시대>의 한 장면을 패러디해 해외감염병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예능 <복면가왕>에서 화제가 된 ‘상상도 못 한 정체’를 패러디해 진드기의 위험성을 알리기도 했다. 최 주무관은 “SNS를 통해 반응을 확인하니 ‘세금이 잘 쓰이고 있다’ ‘건강정보를 재밌게 알려줘 기억하기 좋다’ 같은 긍정적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질병관리본부는 국민 건강과 직결된 부분을 관리·감독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국민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박찬비(미디어 17) 학우는 “인지도가 보장돼야 확실한 효과를 내는 정책이 있다”며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공공기관의 정책이라고 생각한다”고 공공기관의 B급 문화 활용을 긍정적으로평가했다.

 

선 넘는 B급, 우려의 목소리도
일각에선 B급 문화의 확산을 우려하기도 한다. B급 문화는 재미를 위해 수위 높은 언어나 행위로 대중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김민영(홍보광고 19) 학우는 “B급 문화를 이용한 마케팅이 계속된다면 소비자는 점점 더 원초적인 자극을 원할 것이다”며 “이에 발맞춰 광고회사 또한 더 자극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악순환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염려했다. B급 문화가 주로 유튜브처럼 전 연령대에게 제한 없이 공개된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 또한 지적의 대상이 됐다. 박 학우는 “B급 문화라 할지라도 공개범위에 제한이 없다면 표현의 규제 측면에서 논의가 필요하다”고 B급 문화 자정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자이언트 펭TV 또한 B급 문화를 향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폭넓은 시청연령에 적합하지 않은 내용을 비판 없이 다뤘다는 내용이다. 유튜브에 공개된 자이언트 펭TV의 ‘EBS 아이돌 육상대회 2부’와 ‘EBS 옥상에서 뚝딱이 선배님을 만났다’ 편에선 EBS 원조 캐릭터 ‘뚝딱이’가 일명‘꼰대짓’을 하는 모습이 비쳤다. 꼰대는 나이 많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행위를 이른다. 이실유(미디어 18) 학우는 “이는 자이언트 펭TV를 시청하는 아동을 고려하지 않은 연출이다”며 “캐릭터의 행동이니 맥락을 아는 사람에게는 유머가 되지만 아동은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따라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B급 문화의 사용에 전반적인 자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B급 문화의 유머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를 바탕으로 하기도 한다. 호텔스컴바인의 유튜브 광고에선 광고모델이 ‘고요 속의 외침’이라는 게임을 통해 서비스를 소개한다. 예능 <신서유기>에서 소개된 뒤로 인기를 끈 고요 속의 외침은 소리가 차단된 상황에서 입 모양을 보고 단어를 맞추는 게임이다. 김 교수는 “해당 게임이 유발하는 웃음에선 구화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누군가 웃을 때 웃지 못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개선안을 제시했다.

한편, 공공기관이 홍보에 B급 문화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공공기관의 보수적 성격과 상반된 B급 문화가 자칫 기관 혹은 정책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학우는 “조금 딱딱할지라도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친근함보다 우선해야 할 가치가있다”고 말했다. 이에 조 주무관은 “공공기관이라는 점에서 이미 신뢰도는 보장된다”며 “대상에게 의도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홍보 수단으로써 B급 문화뿐만 아닌 다양한 시도는 필수적이다”고 일축했다.

 

B급 문화는 ‘선’의 전략이다. 이윤영(일본 18) 학우는 “B급 문화는 일반인이 ‘문화’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다”고 B급 문화에 대한 인식을 드러냈다. 주류 사회가 ‘예절’과 ‘규칙’으로 높게 그어둔 선을 낮춰 대중의 접근을 쉽게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영역이 B급 문화를 수용하는 현상은 곧 사회가 개개인의 영세한 반응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나 B급 문화가 지켜야 할 선 또한 분명하다. B급 문화가 인터넷을 활발히 이용하는 젊은 세대에서 특히 호응한다는 점은 분명한 한계다. 인터넷 등 B급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곳에서 배제된 사람에겐 또 다른 ‘선’이 될 수 있다. B급 문화가 소수자를 향한 공격으로 사용되는 것 또한 지양해야 한다. 류훈택 과장은 “기성문화에 대한 도전과 소비자와의 소통을 위해 B급 문화가 사용될 때 진정성을 가진다”고 말했다. 선 넘지 않는 B급 문화를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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