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는 비단 톨스토이만의 화두가 아니다. 정기자가 되고 필자도 같은 고민을 했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주변의 사랑이 사람을 살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반년 전 함께 시작했던 수습기자들은
대다수가 떠나고 없다. 와중에 동료 기자는 꿈을 위해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단지 자기소개서 장래 희망 칸을 채우기 위해 꿈을 만들어둔 필자에게 큰 울림은 없었다. 무슨 답을 할 수 있는지 생각했지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다행히도 숙대신보는 말문 막혀 할 틈도 없이 해야 할 일들을 던져줬다.

초를 다투며 기사 개요, 인터뷰 요청서, 그리고 질문지 등을 해치운다. 당장 의미를 갖진 못해도 끝에는 하나의 기사가 된다. 여러모로 부족해도 잘 견뎌왔단 징표로는 모자람이 없다. 다만 학보사 일이 그저 견디는 것으론 부족해서 문제다. 한 번의 발간을 밑거름 삼아 다음번 발간에선 발전해야 한다.지면이 허락하는 분량은 정해져 있고, 한정된 분량을 어떤 말로 채워야 독자에게 닿을지 고민해야 한다. 언제나 한발 늦는 필자는 이 간단한 원리를 지난 두 번의 발간을 거치고서야 간신히 깨달았다.

늦은 깨달음 뒤에는 자책이 따른다. 연휴 동안 제 무지와 무능력을 비롯한 온갖 없음(無)에 시달렸다.고민하던 질문에 답은 내지 못한 채 세 번째 발간이 눈앞이었다. 업무가 밀려들기 시작했고 일이 쌓이면서 매분 매초가 숨통을 조였다.

하지만 야스퍼스가 말했듯 인간은 한계상황에 직면해 실존을 회복한다. 업무를 하나씩 해치우면서 필자는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스스로가 일을 미루다 끝내 포기하는 한심한 종자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니 일을 완수하면서 얻는 충족감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고민하던 질문에도 답할 수 있게 됐다. 지금 필자는 사람이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숙대신보가 그 완성의 단초가 되는 경험을 주리라고도 믿는다. 앞으로의 기자 생활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