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론 > 이주의 문화
여성 서사와 대한민국 미디어에 관해[이주의 문화]
숙대신보  |  shinbosa@sm.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9.0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2019년 8월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하 기림의 날)을 일주일 정도 남겨 두고 영화 <김복동>이 개봉하였다. 영화 <김복동>은 한평생을 일본군 ‘위안부’ (이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일본 정부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힘쓰셨던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필자는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 영화는 꼭 영화관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가 본교 동아리 연합회에서 진행했던 ‘기림의 날 함께하기’이벤트에 당첨돼, 영화 <김복동> 관람권을 받아 함께 보러 가게 되었다. 친구와 일정을 정하기 위해 영화 <김복동>의 상영관과 상영시간을 찾아보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영관도 적었고 상영일정도 하루에 두세 건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개봉한 일제강점기 독립군에 관한 영화 <봉오동전투>의 상영관과 상영시간이 많고 다양한 것을 보며 영화를 보기도 전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일정을 정한 뒤, 좌석을 정하기 위해 친구가 보내준 좌석배치도는 총 4열에 불과했다. 이 나라의 대중문화 속에서 여성과 여성의 서사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받은 여러 충격을 뒤로하며 우리는  상영관 맨 끝자리에 앉았다.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우리를 포함해 열 명 정도 되었다. 온 국민이 공감하고 있는 듯 했던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의 관객 수가 턱없이 적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보니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손을 비누로 여러 번 꼼꼼히 씻고 헹구는 영화의 시작 장면이 내 마음 깊이 남았다. 마치 손과 같은 신체 부위는 깨끗이 씻으려 노력하면 씻기지만, 위안부 피해 사실과 일본 정부의 만행으로 상처 입은 마음은 씻으려 해도 씻기지 않는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김복동 할머니는 ‘바위처럼’이라는 노래와 같이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 같으신 분이셨다. 실제로 편찮으신 몸을 이끌고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를,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셨고 해가 쨍쨍한 날에도, 비바람과 눈발이 몰아치는 날에도 수요시위에 참석하시곤 했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마치 바위처럼 굳게 행동하시도록 했던 그 무언가는 어떤 것이었을까? 다른 전시 성폭력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정부와 군대가 나서서 여성을 대상화하는 비극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 영화는 병세 악화로 김복동 할머니께서 더 행복하고 편안한 곳으로 길고 긴 여행을 떠나신 후, 홀로 남겨진 길원옥 할머니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투쟁하셨던 김복동 할머니께 이 세상은 때로는 차갑고 모질었을 텐데, 마지막 장면에서 비치는 세상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하다. 지금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싸우고 있지만,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러한 투쟁과 싸움에 큰 관심이 없다.

지극히 대조적인 마지막 장면을 뒤로한 채 우리는 상영관 밖을 나섰고, 영화의 무게감과 울림에 압도돼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영화를 본 후에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개중 하나는 이러한 여성의 현실을 그린 여성 서사 콘텐츠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자극적인 대중 매체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미디어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김복동>은 이러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대중들은 여성의 서사를 그린 작품 앞에 냉담하기만 하다. 터무니없이 작은 크기와 부족한 개수의 상영관, 불리한 상영일정은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 수 없다. 하루빨리 여성의 서사가 주목받게 돼, 영화 <김복동>과 같은 작품들이 미디어의 힘을 영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아쉬움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법 19 김나경

숙대신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종이를 접고 전자문서의 미래를 펼치다
2
"페미파워프로젝트, 김지연입니다"
3
인권운동가 공현, 청소년의 '지음'이 되다
4
2019 취업박람회, 유익함 속 아쉬움 남아
5
숙명포털시스템 보안 '주의 요함'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
발행인 : 강정애 | 편집인 겸 주간 : 육성희 | 편집장 : 한예진 | 발행처 : 숙명여자대학교|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정애
우)140-742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 47길 100 숙명여자대학교 숙대신보사
행정실 ☎ 710-9150 (Fax) 706-2695 / 편집실 ☎ 710-9721 / 9152
Copyright © 2019 숙대신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mnews@sookmyu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