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문화]

2019년 8월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하 기림의 날)을 일주일 정도 남겨 두고 영화 <김복동>이 개봉하였다. 영화 <김복동>은 한평생을 일본군 ‘위안부’ (이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일본 정부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힘쓰셨던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필자는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많았기에 이 영화는 꼭 영화관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한 친구가 본교 동아리 연합회에서 진행했던 ‘기림의 날 함께하기’이벤트에 당첨돼, 영화 <김복동> 관람권을 받아 함께 보러 가게 되었다. 친구와 일정을 정하기 위해 영화 <김복동>의 상영관과 상영시간을 찾아보았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영관도 적었고 상영일정도 하루에 두세 건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개봉한 일제강점기 독립군에 관한 영화 <봉오동전투>의 상영관과 상영시간이 많고 다양한 것을 보며 영화를 보기도 전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일정을 정한 뒤, 좌석을 정하기 위해 친구가 보내준 좌석배치도는 총 4열에 불과했다. 이 나라의 대중문화 속에서 여성과 여성의 서사가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받은 여러 충격을 뒤로하며 우리는  상영관 맨 끝자리에 앉았다. 영화관을 찾은 관객들은 우리를 포함해 열 명 정도 되었다. 온 국민이 공감하고 있는 듯 했던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의 관객 수가 턱없이 적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보니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손을 비누로 여러 번 꼼꼼히 씻고 헹구는 영화의 시작 장면이 내 마음 깊이 남았다. 마치 손과 같은 신체 부위는 깨끗이 씻으려 노력하면 씻기지만, 위안부 피해 사실과 일본 정부의 만행으로 상처 입은 마음은 씻으려 해도 씻기지 않는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김복동 할머니는 ‘바위처럼’이라는 노래와 같이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 같으신 분이셨다. 실제로 편찮으신 몸을 이끌고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전국 각지를,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셨고 해가 쨍쨍한 날에도, 비바람과 눈발이 몰아치는 날에도 수요시위에 참석하시곤 했다.

김복동 할머니께서 마치 바위처럼 굳게 행동하시도록 했던 그 무언가는 어떤 것이었을까? 다른 전시 성폭력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정부와 군대가 나서서 여성을 대상화하는 비극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을까? 영화는 병세 악화로 김복동 할머니께서 더 행복하고 편안한 곳으로 길고 긴 여행을 떠나신 후, 홀로 남겨진 길원옥 할머니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투쟁하셨던 김복동 할머니께 이 세상은 때로는 차갑고 모질었을 텐데, 마지막 장면에서 비치는 세상의 모습은 평화롭기만 하다. 지금도 누군가는 끊임없이 싸우고 있지만,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이러한 투쟁과 싸움에 큰 관심이 없다.

지극히 대조적인 마지막 장면을 뒤로한 채 우리는 상영관 밖을 나섰고, 영화의 무게감과 울림에 압도돼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영화를 본 후에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개중 하나는 이러한 여성의 현실을 그린 여성 서사 콘텐츠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자극적인 대중 매체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미디어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강하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김복동>은 이러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대중들은 여성의 서사를 그린 작품 앞에 냉담하기만 하다. 터무니없이 작은 크기와 부족한 개수의 상영관, 불리한 상영일정은 대중들의 관심을 이끌 수 없다. 하루빨리 여성의 서사가 주목받게 돼, 영화 <김복동>과 같은 작품들이 미디어의 힘을 영리하게 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아쉬움을 남기며 글을 마친다.


                                                                                                             법 19 김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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