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과 수술만으로 인간이 건강해질수 있을까? 사회 역학자는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사회 역학은 인간의 건강을 연구할 때 기존의 지배적 관점인 생의학적 관점을 인정하면서 사회적 요인까지 함께 분석하는 학문이다. 사회 역학은 사회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현대 사회에서 질병의 사회적 해결에 관한 담론을 형성해왔다. 지난 2005년 세계 보건 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WHO)에선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위원회(The Commission on SocialDeterminants of Health)’를 조직했다.

“왜 사회적 약자는 더 아플까?”
사회 역학은 건강 불평등에 대한 세계적 논의와 함께 발전했다. 지난 1980년 영국 노동당 정부의 의뢰로 발표된 「블랙보고서(Black Report)」에선 무상 의료체계가 있음에도 영국의 건강 불평등 문제가 여전함을 지적했다.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건강형평성센터장은 “블랙 보고서는 당시 정책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연구자들에겐 큰 영향을 줬다”며 “이후 건강 불평등에 관한 연구가 늘었고,이를 바탕으로 ‘사회 역학’이라는 제목을 단 책들이 출판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사회 역학의 첫 교재로 여겨지는 「사회 역학(Social Epidemiology)」은 지난 2000년에 출간됐다. 하버드 대학교의 두 학자는 기존의 사회 역학 연구를 모아 「사회 역학」을 엮었다. 「사회역학」서문엔 ‘사회 역학을 전공했다는 학생의 말에 한 역학자가 ‘그런 학문은 없다’고 지적한 사건을 계기로 책을 집필했다’고 쓰여 있다. 신영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와 김 센터장은 동료들과 함께 지난 2003년「사회 역학」을 한국어로 공동 번역했다. 김 센터장은 “대학에 다니던 시절까지만 해도 사회 역학이라는 과목 자체가 없었고, 사회 역학은 역학이나 보건학의 일부로 여겨졌다”며 “지금은 국내 대학에도 사회 역학 전공이 개설된 곳이 늘어난 상태다”고 말했다. 사회 역학에 대해 신 교수는 “사회 역학이 젊은 학문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인 동시에 나쁜 의미다”며 “새로운 가설이 많이 발표될 수있으나 뿌리 깊은 이론은 적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학계엔 사회 역학과 기존 역학 사이의 관계에 관한 논쟁이 존재한다. 역학은 건강과 관련한 요소 및 질병의 발생, 분포, 통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신 교수는 “때때로 학자와 사회 역학자 사이엔 긴장이 감돈다”며 “역학자는 사회 역학이 역학에 포함된다고 보지만, 사회 역학자는 그 반대로 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회 역학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사회 의학에 뿌리를 둔다. 사회 의학은 질병 및 장애의 사회적, 유전적, 환경적 요인을 분석하고 예방법을 찾기 위한 학문이다. 사회 의학의 기원은 19세기 독일의 병리학자 루돌프 비르효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 교수는 “감염병 발진티푸스가 유행하던 시기 사람들은 발진티푸스의 원인이 세균이라고 생각했지만, 비르효는 가난을 원인으로 지목했다”며 “비르효는 발진티푸스를 퇴치하려면 의학적인 치료보다 완전한 민주주의,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는 방법
사회 역학과 기존의 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연구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연구방법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사회 역학은 다음의 여섯 가지 접근 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발달과 생애주기 관점
사회 역학은 어린 시절의 성장 환경이 이후의 건강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신교수는 “사회 역학에 의하면 노년기의 건강을 보장하기 위해선 태아 단계에서부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며 “이러한 생애 주기적 접근 방식은 기존의 역학에선 사용하지 않던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반 감수성 가설
보건의료분야에서 사용되는 감수성(Susceptibility)은 질병에 대한 취약성을 의미한다. 사회 역학은 일반 감수성 가설에서 특정 사회적 환경이 질병 전반의 면역력을 변화시키기도 한다고 말한다. ‘일반 감수성’ 가설의 창시자 웨이드 프로스트는 ‘빈곤과 열악한 생활 조건만큼 모든 질환에 대한 저항력을 변화시킨 것은 없다’고 말했다.

생태학적 관점
사회 역학은 질병의 원인을 밝히는 데 개인적 접근과 사회적 접근을 동시에 이용한다. 사회 역학에선 개인, 환경,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모두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신 교수는 “사회 역학에서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강조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사회 역학에선 질병에 대한 기존의 개인적 접근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원인도 함께 고려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인구 집단적 가설
사회 역학은 질병 발생 요인을 분석할 때 개인보다 집단에 주목한다. 기존 역학에서 ‘이 사람은 왜 아픈가?’를 묻는다면 사회 역학에선 ‘이 집단은 왜 아픈가?’를 묻는다. 신 교수는 “질병에 대한 접근 방식에 따라 대응 방식도 달라진다”며 “기존 역학이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약을 처방할 때, 사회 역학은 고혈압 환자의 비율이 높은 집단을 찾아 고혈압 유발의 사회적 요인을 조사한다”고 전했다.

다수준 분석
사회 역학에선 개인 특성과 지역 특성을 모두 고려해 질병의 원인을 분석하는데, 이는 다수준 분석에 해당한다. 개인 특성은 집단을 구성 요소로 환원할 수 있다고 보지만 지역 특성은 구성 요소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효과도 존재한다고 본다. 보건복지부의 「국민보건의료실태조사」에 의하면 지난 2017년 서울에서 인구 10만 명당 심장질환 사망률이 28.3명이었던 반면 경상남도에선 45.3명에 달했다. 개인 특성 차원에선 서울과 경남의 사망률 차이는 서울에 건강한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지역 특성 차원에선 의료 기반 시설이 서울에 집중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행동의 사회적 맥락
사회 역학은 사회적 맥락이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한 행동이 다른 행동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고 본다. 행동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술도 마신다’는 말은 편견이 아니다. 흡연이 음주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한 연구는 흡연자 집단의 문제 음주 비율이 비흡연자 집단의 세 배 이상이라고 보고했다(노동현, 한덕현, 나철, 민경준, 박두병, 2011). 사회 역학은 음주를 유도한 흡연처럼 ‘사람들을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위험’도 연구 과제로 삼는다.

정의로운 사회, 온전한 건강의 시작
사회 역학의 연구 결과는 건강 불평등 완화 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동성 연인들의 법률혼 여부에 따른 정신 건강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결혼한 이성 연인들은 가장 낮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에 비해 법률혼이 불가능한 성 소수자 연인들은 가장 높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다(Wight, LeBlanc & Lee Badgett, 2013). 해당 논문의 결론에서 저자들은 ‘공공 보건 분야에서만이라도 동성 결혼의 잠재적 이점을 검토해야 한다’고 기술했다. 사회 역학 연구가 정책에 반영되려면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김 센터장은 “지난 2000년대 초반 세계적으로 활발했던 건강 불평등 담론은 당시 국내 정책엔 반영되지 않았다”며 “당시 정치 환경이 사회 역학에 우호적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사회 분위기도 불평등에 민감하지 않았고, 건강 불평등을 다루는 대중매체도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연구자들은 건강 불평등 완화를 위해 사회 역학 연구와 정책 사이의 접점을 넓혀가야 한다고 말한다. 김 센터장은 “논문에서 복잡한 모델을 사용해 나온 연구 결과와 실제로 정부에서 개발하고 시행하는 정책 사이엔 간극이 크다”며 “정책 연구자들 사이에서 연구 논문은 많은 것에 비해 정책 효과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요구가 있다”고 말했다.

국가 수준의 통계 자료가 풍부해지면 사회 역학이 발전할 수 있다. 본교 김영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질병 유발 요인에 노출된 사람들이 처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표본을 대상으로 연구해야 한다”면서도 “표본을 키워 정확한 연구를 하는 데엔 막대한 경비가 들기 때문에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사회 역학은 보건 정책의 효율을 높이는 데에 기여한다. 질병의 사회적 분포를 밝혀내 맞춤형 보건 정책을 수립할수 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홍역, 결핵 등의 전염병으로 인한 사망자는 약이 개발되기 전에 이미 많이 감소한 상태였다”며 “이는 영양 상태와 위생 환경이 개선됐기 때문인데, 이처럼 건강엔 의학적 요소보다 사회 정책적인 요소가 더욱 중요한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 역학은 불평등 문제 전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올 수 있다. 김 센터장은 “건강 불평등은 사회적 불평등이 누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며 “사회역학이 좀 더 대중화된다면 사회 불평등을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 좋은 진입 지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의 조건으로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주장했다. 건강과 안녕을 보장 받을 권리는 생명체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건강권을 평등하게 행사하는 날까지 사회 역학은 인간의 편에서 질병을 중재할 것이다.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는 지난 2015년 국제 연합 회원 국가들이 모여 합의한 국제약속이다. 목표 1부터 목표 6까지는 빈곤을 퇴치하고 기아를 종식하는 등 세계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마련됐다. <사진제공=유네스코한국위원회>

참고문헌: 노동현, 한덕현, 나철, 민경준, 박두병. (2011). 흡연이 음주 양태에 미치는영향. 신경정신의학, 50(3), 222-227Berkman, L. F., & Kawachi, I. (2010).
사회역학. (신영전, 김명희, 전희진, 공역).한울아카데미. (2000)
Wight, R., LeBlanc, A., & Lee Badgett,M. (2013). Same-Sex Legal Marriageand Psychological Well-Being: FindingsFrom the California Health InterviewSurvey.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103(2), 339-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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