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우리가 어떤 중대한 선택에 앞서 흔히 따져보는 부분 중 하나가 기회비용이다. 기회비용은 어떤 선택으로 인해 포기할 수밖에 없는 다른 선택지 중 가장 가치 있는 선택이 지닌 가치다. 필자에게 있어 숙대신보 선택의 기회비용은 크게만 느껴졌다. 동기들이 본인의 꿈을 좇아 각종 공모전, 공인영어인증시험, 어학연수 등을 준비할 때 필자는 기사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시험기간은 물론 전공 강의보다 취재가 우선됐다. 당장의 기사가 급했기에 필자의 미래를 그려볼 선택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한 번도 쉬웠던 발간은 없었다. 월요일 가판대에 놓인 신문을 보고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책으로 그치진 않았다. 적어도 우리의 이름이 새긴 기사는 부끄럽지 않도록 하자는 다짐이 한 주의 숙대신보를 만들었다. 지난 호를 되짚고 앞둔 호를 준비하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기자들의 스스럼없는 피드백 덕에 기사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 있었다. 

‘좋은 기사는 무엇일까.’ 필자가 계속 고민해온 질문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정의내릴 수 있을 듯하다. 조금이라도 변화를 일으켰다면 그것이 좋은 기사가 아닐까. 적어내린 몇 글자들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우리들을 변화시켰다.

지난 대학생활의 전부는 숙대신보였다. 숙명에 입학한 동시에 숙대신보에 입사했고, 전공 서적을 읽는 동시에 신문에 실린 필자의 기사를 읽었다. 시간을 돌려 필자에게 다시금 선택의 기회가 주어져도 숙대신보를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숙대신보 외의 선택으로 인한 기회비용보단 숙대신보를 선택해 생긴 기회비용이 더 작을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힘들었던 취재 과정은 동료 기자들과 웃으면서 말하는 추억이 됐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숙명을 조금씩 바꿨다. 

이젠 다음 주자에게 배턴을 넘겨주려 한다. 지난해 이 시간, 남은 1년을 계획했다. 그 계획들은 이제 막 출발하는 편집장의 패기와 열정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이정도면 충분하지’라며 안주하고 있었다. 당연한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후배 기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편집장을 앞둔 당시의 필자의 모습이 보였다. 숙명을, 나아가 세상을 바꿀 기자는 충분한 것에서 멈추지 않아야 한다. 숙대신보의 작은 시선들이 일으킬 숙명의 변화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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