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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다른 우리, 다다른 우리
이새롬 기자  |  smplsr96@s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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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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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이하 새터민)’ 남한에 온 북한이탈주민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나 열리며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동시에 바람직한 통일 준비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에 본지는 통일과 직접적으로 연계된 세대인 대학생의 시선으로 남북의 차이를 바라보고 이를 좁히기 위해 해당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지난 2일(목), 본지 기자단은 본교 북한 인권동아리 HANA(Humanitarian Action for North KoreA) 소속 구주은(경제 17) 학우, 유민지(한국어문 18) 학우와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북한이탈주민 서강은(가명, 여·28) 씨, 장철혁(남·27) 씨, 주혜경(여·32) 씨를 만났다.

*기사 이해도를 돕기 위해서 출신지를 토대로 (남), (북)을 표기했다.

“서로에 대해 알아 가볼까요”
우리는 서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사소하지만 알 수 없던 것들에 대해 자유롭게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북한의 대학생도 MT를 갈까? 북한 대학의 학점 기준은 어떻게 될까? 북한말로 아이스크림은 얼음보숭이일까?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잘 모르고 있었다.

구주은(남): 저는 북한 인권을 위해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만, 매체를 통해 접하는 자료가 한정적이다 보니 북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지 못해요. 피골이 상접한 북한 사람들이 식량부족으로 인해 굶고 있는 사진만 봤어요.
서강은(북): 오히려 저희는 ‘남조선 어린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어요. 어릴 때 구두닦이 남한 소년 그림을 봤거든요.
구주은(남): 서로의 현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다 보니 서로를 향한 무지함은 더욱 커지는 것 같아요. 공감하기 힘들어지는 거죠.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매해 증가하고 있다. 본지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북한이탈주민 대학생 모집을 시도했으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들의 마음을 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조언했다. 새로 정착한 이곳에서 그저 평범한 대학생이고 싶은 마음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구주은(남): 북한에서 온 친구들이 꿈을 찾는 모습이 멋져서 북한 인권 동아리 HANA와 통일대학생동아리연합에 가입했어요.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없어질 때까지 함께 놀며 배우고 싶은데 HANA 내 북한 출신 친구들이 한명도 없다는 것이 안타까워요.
서강은(북): 숙명여대 동아리에 북한 친구들이 오지 않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북한 친구들에게 남한은 낯선 세상이기에 자신들만의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주혜경(북): 공감해요. 남한 대학생들이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멋지지만 사실 저도 이런 주제가 민감해 오히려 멀리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북한 출신이란 이미지에 갇힐까봐 일부러 피하기도 했고요.
구주은(남):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한 출신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친구들의 용기가 고맙네요. 저는 북한 인권 실태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북한 출신 친구들과 교류하며 알아가고 싶어요. 우리가 북한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잖아요.

“가깝고도 먼 우리를 말하다”
평양은 서울에서 버스로 2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제주도나 부산보다 가까운 거리다. 가깝고도 먼 이곳으로 오기까지 그들은 어땠을까? 그리고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주혜경(북): 저는 19살 때 탈북해서 중국에서 신분 없이 7년을 살았어요. 배움에 대한 열의로 영어 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신분증이 없어 다닐 수가 없었죠. 이렇게 살면 나중에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열심히 모은 돈을 뺏기는 힘든 과정도 겪었죠. 삶의 의지를 잃고 좌절하던 와중에 남한에 오게 됐어요. 남한 대학에 입학하고자 학원에서 시험을 봤는데 문제를 못 풀겠더라고요. 속상해서 펑펑 울었어요. ‘내가 이 문제도 못 푸나?’라는 실망감이 들었거든요. 대학에 와서도 공부는 재밌지만, 학점은 좋지 않아 속상했어요. ‘내 공부 방법이 틀렸나, 다른 애들은 어떻게 공부하나’ 고민도 해봤죠.
사실 지금도 가끔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어요. 원래 제 성격은 굉장히 활발했는데 탈북한 후 말이 줄고, 듣기만 하게 됐거든요. 환경에 따라 성격이 변한 거죠. ‘나는 사실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예전처럼 활발하게 놀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저도 남한 대학생처럼 대학 생활을 즐기고 싶어요.
서강은(북): 저는 동기들이 미팅에 데려가 줬을 때 무척 고마웠어요. 북한에서 왔다는 것에 다들 깜짝 놀라는 눈치였지만요. 당시에는 재밌었는데 돌아온 후엔 주책없었다고 자책했죠.
주혜경(북): 저도 사실은 미팅을 무척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린 친구들과 미팅을 나가면 주책이란 생각에 미안해서 거절을 했지만요. 다시 생각해보면 스스로에게 선입견을 가졌던 것 같아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돼 미리 주춤하는 마음이 컸죠.
장철혁(북): 저는 11살 때 북한에서 넘어왔어요. 아버지는 잡혀가셨고 저는 4살 어린 동생을 업고 몽골 사막에서 길을 찾느라고 헤매기도 했어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비린내 나는 우유를 먹거나 공안을 피해 흙바닥에 얼굴을 대고 숨기도 했죠. 험난한 과정 끝에 도착한 남한에서도 적응하긴 쉽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북한 출신인 것을 밝히지 말라고 하셔서 부산에서 왔다고 소개했는데 말투에서 티가 난거죠. 우유급식으로 괴롭힘을 당했어요. 또래 친구들이 제 교과서나 사물함 안 체육복에 우유를 부어놨죠. 하교할 땐 친구들이 육교에서 저를 기다리다가 실내화가방으로 위협했어요. 그래서 육교 대신 목숨을 걸고 무단횡단을 하기도 했어요.
김보은(남): 담임선생님의 선택이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말하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제대로 교육을 했어야 해요. 선생님마저 북한 출신임을 숨겨야 한다고 가르치니까 아이들 생각이 편협할 수밖에 없죠.
장철혁(북): 저희 어머니가 밤 10시까지 설거지 일을 하시니까 학교에 오실 여건이 안 됐어요. 최대한 어머니 귀에 안 들어가게 노력했죠. 안 싸우고 피해 다니거나 맞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참았어요. 지금은 친구를 통해 꿈을 찾아 웹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있어요.

이룩할 미래를 위해 맞잡은 손
제도적 통일보다 어려운 것은 서로의 마음을 잇는 통일이 아닐까. 우리는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조금 다른 것일 뿐이다. 완전한 통일을 위해선 먼저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어쩌면 통일은 이미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유민지(남): 각자 자라온 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견해차가 클 거라고 예상해요. 양측 모두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아 아직은 시기상으로 좀 이르다고 생각해요. 먼저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겠죠.
구주은(남): 어쩔 수 없이 어떠한 방법으로든 통일은 올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사회의 준비가 부족하죠. 제가 좋아하는 미국 북한 인권 비정부(NGO, Non-Governmental Organization) ‘LINK(Liberty In North Korea)’의 이야기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일반 자선단체처럼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목적이 아니라  북한에서 꿈을 가지고 선을 넘어온 사람들의 역량과 삶을 재조명하거든요. 우리도 이렇게 인식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보는 게 어떨까요.
서강은(북): 저는 사실 편견을 가지고 있었어요. 숙명여대 통일 관련 포럼 와보고 느꼈지만 저희보다 지금 더 사명감 가지고 임하시는 것 같아서 감사해요. ‘어떤 노력을 기울이면 좋을까요?’ 세세하게 물어봐주시는 모습을 보며 저희도 조금 양보하고 동참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민지(남): 솔직히 세 분 처음 봤을 때 북한 사람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우리는 다른 게 없는 한 민족이고, 같은 사람인데 북한·남한이라는 잣대로 선을 그어놨다고 생각해요. 이 선을 지우기 위해서 우리 스스로 노력하면서 벽을 허물면 좋겠어요.
서강은(북): 대학생활, 자신의 삶, 서로 바빠서 자기 것만 챙기려고 하잖아요. 저도 저를 우선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앞으로는 저희에 대해 궁금하다면 북한 삶에 대해 객관적인 답을 폭넓게 드릴 마음의 준비가 된 것 같아요.
구주은(남): 앞으로도 꾸준히 서로를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통일을 위해 정책을 제정하려면 서로를 이해해야하잖아요. 그런데 교과서나 미디어를 통해 이론적으로만 바라보다보니 편협해지고,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앞으론 더 많이 소통했으면 좋겠어요.

유럽연합(United Nations, UN)에서 북한을 알리고 싶다는 주혜경 씨, 전공을 살려 웹 프로그램 개발자가 되겠다는 장철혁 씨, 어려운 환경에 놓인 사람들의 꿈을 찾아주고 싶다는 서강은 씨는 우리와 같은 꿈을 가진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오수영 작가의 에세이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서로를 안다고 믿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실은 오해하기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서로의 모습은 결국 상상력에 불과했을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이 마주할 북한을 위해 사고의 전환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궁금해하는 사이가 된다면 통일에 한걸음 가까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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