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현직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튀지 말고 둥글둥글하게 살기’ ‘모난 돌이 정맞는다’라는 처세술이 내면화된 우리 사회에서 용기 낸 불편한 진실에 대한 고백이다. 개인주의가 흔히 이기주의로 오해되는 현실에서 감히 개인주의자라고 선언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문유석 판사가 말하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의 개인주의가 아닌 집단주의의 반대개념으로서의 개인주의이다. 개인이 주체적인 자기 사고와 자기 생각을 가진 자아임을 의미한다. 저자는 그의 책에서 주말에 하는 체육대회를 싫어하며, 저녁 회식과 행사를 싫어한다고 고백한다. 집단이라는 이름으로, 회식과 노래방문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문화에 대한 항거이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받아들여야 하고 눈치껏 알아서 행동해야 하는 집단주의 문화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러나 집단주의 혹은 군사문화가 사실상 경제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었음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구성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행동하고, 신속함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리더의 빠른 의사결정으로 명령해서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 집단주의의 장점보다 이제는 단점이 더 커져 보이는 시대가 됐다. 창의적 사고, 개성을 살리는 교육, 획일성보다는 다양함의 가치가 더 필요함에도 현실은 늘 표준화된 ‘스펙(Spec)’을 원한다. 이러한 새로운 인재상을 내세우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은 여전히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눈치와 체면과 모양새와 뒷담화와 공격적 열등감과 멸사봉공과 윗분 모시기와 위계질서와 관행과 관료주의와 패거리 정서와 조폭적 의리와 장유유서의 일사불란함과 지역주의와 상명하복과 강요된 겸손 제스처” 등이다.

학연, 혈연, 지연을 중시하는 연고주의 문화는 비공식적으로 아직도 건재하다. 공공기관에서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하는 우스꽝스러움이 이를 반증한다. 3, 5, 10만 원 기준을 정해 이리 이리하라는 김영란 법 적용도 이러한 현실을 설명해준다.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SKY CASTLE)>이 상징하는 것이지만, 초중고 9년간은 현실적으로 대학입시를 위한 과정이며, 대학 졸업 후에는 좋은 직장 취업, 결혼, 아파트 장만, 거의 자동화된 진로의 코스에 속해 있어야만 맘 편한 사회, 여기에서의 일탈은 패배자와 불행의 원천으로 인식되게 만드는 사회. 실제 우리가 사는 사회는 빛의 속도로 소통하고, 정보공유가 일어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사고와 행동 문법은 문화의 영향 아래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다양함보다는 표준화된 가치관, 표준화에서 벗어나면 뒤처진 것처럼 만드는 사회문화. 저자는 이러한 집단주의 문화의 성찰을 강조한다. 눈에 보이는 스펙만이 중요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개인의 가치관, 성격은 이러한 획일성이 강조되는 사회에서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진다. 그러나 조직에서 같이 일하다 보면 스펙이 알려주는 능력보다는 스펙에 없는 인간적 품성이 더 중요함을 알게 되며, 개인이 가진 배려, 성실성 등이 더 소중함을 알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즉, 스펙만을 강조하는 환경에서는 중요한 것들의 가치는 차순위가 돼 버린다. 저자는 개인주의가 이기주의로 이미 오해받는 의미에서 합리적 개인주의를 주장한다. 합리적 개인주의는 사회학자 정수복의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서 주장하는 합리적 성찰적 개인주의와 상통한다. 쏠림현상이 두드러지는 문화, 왜곡된 정보가 순식간에 사회관계망을 타고 전파되는 환경에서 문화에 대해 뒤집어보기, 비판적 접근은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19학번 신입생들의 신선함으로 캠퍼스가 분주해지는 바로 이 춘삼월에 몇 해 전 본 어느 교수님이 모습은 머릿속에 감동으로 남아있다. 순헌관 쪽의 이제 갓 피어나는 매화 앞에 서서 혼자 조용히 매화가 피어나는 것을 바라보던 모습이다. 더불어 새봄을 맞아 학과 점퍼를 입은 우리대학 학생들도 많아질 것이다. 이제 앞으로는 과잠 대신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옷을 입는 것은 안 되는 일일까 희망해본다. 
 

조삼섭 홍보광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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