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3·1 운동 100주년의 해다.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토)을 기점으로 일어난 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 만세운동이다. 지난달 26일(화), 정부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에게 1등급 건국훈장인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기로 했다. 본교 역시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에 참여한 숙명인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회 ‘대한제국 황실의 꿈, ‘숙명’에서 타오른 독립의 불꽃’을 연다. 대한제국 황실의 꿈, ‘숙명’에서 타오른 독립의 불꽃을 통해 숙명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더듬어보자.

기록되지 못한 이야기, 여성 독립운동가의 역사
여성은 독립운동을 비롯한 역사 전반에서 지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12월 기준, 독립운동의 행적이 확인된 여성 독립운동가는 약 2천 명이다.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의 수가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에서 서훈을 받은 전체 독립유공자 중 여성의 비율은 약 2%에 불과하다. 서훈을 받은 남성 독립운동가는 1만 4,600명인 데에 비해 서훈을 받은 여성 독립운동가는 357명으로, 4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또한, 여성 독립운동가는 공적을 인정받더라도 사회로부터 차별받기에 십상이다.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인 유관순 열사는 열사라는 호칭보다 ‘언니’나 ‘누나’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낯설지 않다. 남성 독립운동가와 결혼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경우, 그의 이름으로 불리기보다 ‘누군가의 아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경우가 잦다.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남성에 의해 기록된 역사는 가부장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고 답했다.

최근 성차별적인 현실을 인식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이들이 많아짐에 따라 사회도 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28일(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현아 국회의원은 역사 교과서에 실린 여성 독립운동가의 수가 남성 독립운동가보다 현저히 적은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역사 교과서에선 약 16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다루고 있다. 역사 교과서에 언급된 남성 독립운동가의 수가 192명인 것에 비하면 현저히 적은 수다. 그중에서도 여성 독립운동가의 내용은 유관순 열사의 업적에만 치중돼 있었다.

여성 독립운동가가 받는 차별을 없애기 위해선 사회와 개인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심 소장은 “정부 차원의 여성 독립운동연구센터 건립이 필요하다”며 “국내외에서 일어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정부뿐만 아니라 대중 매체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노력 역시 중요하다. 성현빈(영어영문 18) 학우는 “책과 다큐멘터리 등 일반 대중에게 접근성이 높은 매체를 통해 여성 독립운동가의 업적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 학우는 “여성 독립운동가와 관련된 캠페인에 참여하는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며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을 독려했다.

독립 운동의 역사 속 숙명을 만나다
숙명역사관은 지난 4일(월)부터 29일(금)까지 ‘대한제국 황실의 꿈, ‘숙명’에서 타오른 독립의 불꽃’ 전시회를 진행한다. 최시한 숙명역사관 관장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본교의 구성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알아야 한다”며 전시회의 기획 취지를 설명했다.

전시회에선 박자혜 지사를 비롯해 독립운동에 매진한 숙명인의 역할과 공로를 볼 수 있다. 박자혜 지사는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이하 숙명여고보) 기예과 2회 졸업생으로, 조선총독부의원 간호사로 근무하던 중 3·1 운동이 일어나자 간호사 독립운동단체 ‘간우회’를 조직했다. 박자혜 지사를 비롯한 조선총독부의원 의료진은 3·1 운동 이후 일본인이 경영하는 부속병원에 협력하길 거부하는 활동을 벌였다. 박자혜 지사는 이 활동을 주도했으며, 뜻을 함께하는 간호원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3월 10일(월)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숙명여고보 재학 중이던 김종진 독립운동가 또한 3·1 운동에 참여했으며, 독립운동단체 ‘대동단’에 가입해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의 상해 망명을 시도했다. 의친왕의 상해 망명 시도가 실패하자 김종진 독립운동가는 같은 해 11월 제2의 3·1 운동을 계획했다. 만세를 외치다 체포된 김종진 독립운동가는 약 1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또한 조복애 선생은 1941년 숙명여자전문학교 재학 중 일제의 한반도 침탈정책을 비판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약 7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현재 조복애 선생에 대한 서훈 절차를 진행 중이다.

전시회를 통해 독립을 위한 학생 개개인의 노력과 더불어 3·1 운동, 광주학생운동, 제1차 맹휴 사건 등 여러 숙명인이 참여한 사건들도 접할 수 있다. 1919년 3월 5일(수)엔 숙명여고보 3학년 학생인 이은혜·임종호의 주도하에 학생들의 집단 운동이 일어났다. 숙명여고보 학생 200명은 거사 전날 일본 순사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자주색 갑사댕기를 드려 귀밑까지 땋아 묶었다. 저고리 소매를 뜯어 태극기를 그린 후 품에 숨긴 학생들은 거사 당일 서울역으로 달려가 만세를 불렀다.

1927년 5월부터 9월까지 이어진 숙명여고보 제1차 맹휴 사건은 일본인 교사의 차별에 분노한 학생들이 동맹 휴학을 한 사건이다. 맹휴 사건을 이끈 숙명여고보 19회 졸업생 장옥려를 포함한 학생들은 해당 일본인 교사의 사퇴와 조선인 교사의 채용, 학생 대우 개선 등 6개의 요구 조건을 걸고 126일간 동맹 휴학을 지속했다. 해당 사건은 민족독립을 위한 학생 항일운동의 본보기가 됐다.

1930년 1월에는 조금옥·박선봉·윤을희 등 숙명여고보 4학년 학생들의 주도로 서울 지역 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서울 지역 학생 독립운동은 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기점으로 전국에서 일어난 학생 독립운동이다. 숙명여고보 4학년 학생들은 이화·동덕·배화 등 각 학교 대표들과 함께 여학생 궐기를 결의했다. 그러나 여학생 궐기는 경찰의 개입으로 저지당했고, 조금옥·박선봉·윤을희 등 총 6명이 구속됐다.

전시회는 백주년기념관 1층에 위치한 숙명역사관과 순헌관 1층에서 진행된다. 최 관장은 “가공되지 않은 자료를 통해 본교의 독립운동 역사를 보며 미래를 생각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학우들이 전시회를 관람하기를 독려했다.

여성이여, 기억하고 기록하라
우리가 여성 독립운동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국민의 의무 때문만이 아니다. 독립운동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부분에서 여성이 지워져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오스트리아의 헤디 라머(Hedy Lamarr)는 와이파이(Wifi)와 블루투스(Bluetooth) 등이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인 주파수 도약 기술을 발명했다. 그러나 그의 업적은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워졌다.

본교 중앙여성학동아리 SFA의 여성주의 글쓰기 소모임에선 이러한 인식을 반영해 여성 독립운동가에 관한 칼럼을 작성했다. 여성주의 글쓰기 소모임 팀장을 맡은 김민경(법 16) 학우는 “여성 독립운동가를 가시화하고 기록하기 위해 칼럼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김 학우는 칼럼의 주 내용에 대해 “여성 독립운동가에 무관심한 한국 사회를 비판하고 박차정 열사, 안경신 선생, 차경신 선생의 업적을 소개하는 내용이다”고 설명했다.

박차정 열사, 안경신 선생, 차경신 선생은 모두 서훈을 받은 독립 유공자다. 박차정 열사는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을 비롯해 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 같은 단체에서 공을 세웠다. 여성 독립운동단체인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한 안경신 선생은 평안남도 경찰국 청사에 폭탄을 던지는 등의 무장독립운동까지 불사했다. 차경신 선생은 자금을 임시정부에 조달하고 교포 자녀들의 국어 교육을 맡았다. 김 학우는 “칼럼을 통해 다양한 독립운동의 분야 내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많은 활동을 해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과거 여성들에 대한 기록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은 기록물이 수적으로 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록물이 보존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 학우는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칼럼 작성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학우는 “성차별적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많은 학우가 여성 독립운동가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과거를 통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통로다. 사학자 거다 러너(Gerda Lerner)는 “여성들은 사회의 어떤 다른 조직화된 집단보다 훨씬 오랫동안 무지를 강요당하는 상황 속에서 살았고, 여성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면서 여성 자신의 집단 경험에서 소외되어 살아왔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역사 속에서 지워진 여성을 발굴해냄으로써 자신의 역사를 마주 보고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수 있을 것이다.

*추서: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 본교 백주년기념관에 위치한 숙명역사관의 입구. 3·1운동 100주년 기념 특별전인 ‘대한제국 황실의 꿈, ‘숙명’에서 타오른 독립의 불꽃’이 준비 중이다.

 

▲ ‘대한제국 황실의 꿈, ‘숙명’에서 타오른 독립의 불꽃’의 현수막이다. 현수막에는 박자혜 지사(좌)와 조복애 선생(우)의 사진이 실려있고 전시회의 일자, 장소가 안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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