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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최태성'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다
김보은 기자  |  smpkbe9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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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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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한국사 전성시대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어떻게 준비하나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공부 같이해요!’ 등의 글을 대학가 커뮤니티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각종 국가고시와 기업 입사를 위해 한국사는 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현대인에게 이러한 필수 한국사 시대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 공부해야 할 시간이 늘기 때문이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또 하나의 ‘짐’으로 느끼는 수강생들에게 역사 공부를 다른 시각으로 비춰주는 강사가 있다.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며 그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한 가르침을 진정한 공부라고 생각하는 최태성 강사다. 그는 한국사 강의에 대한 수요가 늘었음에도 오히려 무료로 모든 강의를 배포한다. 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인터넷 강의(이하 인강) 강사로 활동하게 된 최 강사가 무료로 인강을 제공하게 된 사연과 그가 생각하는 대한민국 역사 산업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모두가 듣고싶은 강의를 만들래요”
최 강사는 2001년부터 인강으로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그가 인강을 처음 시작한 곳은 한국교육방송공사가 운영하는 온라인 교육 사이트 EBSi였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강사들이 강의 하는 곳인 EBSi에 그가 합류하게 된 이유는 특별하지 않았다. 그는 “‘텔레비전에 한 번 나와볼까’라는 단순하고 일반적인 생각으로 EBSi를 시작했어요”라며 “처음부터 큰 포부를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었고 학생들을 통해 제가 많이 변화하고 성장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를 변화시킨 것은 한 수강생의 수강 후기였다. 2004년, 국내에는 인강 열풍이 불었다. 당시 EBSi를 통해 강의를 진행하던 최 강사는 우연히 한 학생의 수강 후기를 봤다. ‘저도 유료 강의를 수강하고 싶지만, 형편이 어려워 선생님 강의를 들을 수밖에 없어요. 저는 선생님 강의만 믿고 가겠습니다’라는 후기를 본 최 강사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최 강사는 “자기 만족감에 시작한 강의인데 제 강의에 삶을 거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는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다는 생각으로만 강의를 진행해선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학생의 경제적인 상황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듣고 싶은 강의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죠”라고 말했다.

최 강사는 모두가 듣고 싶은 강의를 만들기 위해 인강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는 “인강은 현장에서 학생과 직접 교류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의 이해도를 파악할 수 없고 혼자 말하기 때문에 어색하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존재해요”라면서도 “그 차이를 최소화하려는 시도가 인강 강사에게 가장 중요하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신 인강은 편집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어요”라며 “다양한 시각적인 효과를 주면서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장치를 구사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최 강사는 2016년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인강강사의 활동에 전념했다. 최 강사는 “2016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공직자 외부활동 제한으로 EBSi를 포함한 모든 외부활동을 그만둬야 했어요”라며 “고민하다가 21년간 교직 생활을 했으니 남은 시간은 강의, 강연 등으로 대중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자 했죠”라고 말했다.

이후 최 강사는 활발한 외부활동으로 누적 수강생 500만 명의 기록을 세웠다. 그는 이러한 기록이 한국사가 각종 시험에서 필수 시험이 돼 가능한 결과라며 겸손을 표했다. 그에게 이러한 ‘한국사 호황기’는 양날의 검으로 느껴진다. 최 강사는 “한국사가 점수를 얻기 위한 암기과목으로 전락하면 역사의 본질과는 멀어져요”라며 “한국사 호황기가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으로써 삶의 방향성에 긍정적인 자극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러한 인식들이 자리잡히도록 강연, 출판, 방송 등을 통해 노력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대학 생활이 가져다준 선물
성균관대에서 사학을 전공한 최 강사가 대학에서 들었던 첫 수업에 대한 느낌은 부정적이었다. 고등학교 과정의 주입식 공부가 익숙했던 그는 수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는데 대학 수업은 스스로 답을 찾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은 본인이 좋아하고, 하고 싶은 학문에 대해 스스로 찾아가는 여정이지 고등학교처럼 주어진 틀 속에서 수동적으로 공부하는 공간과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라며 “대학에선 원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파고 들어가야 했죠”라고 말했다.

최 강사에게 가장 의미 있던 대학 생활은 철학을 공부하는 학회와 세미나였다. 그는 “한 가지 주제로 여러 생각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사고를 확장하는 훈련을 대학에 와서 처음 해봤어요”라며 “그때 생각을 공유하는 작업이 현재 저에게 큰 자산이 됐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학 시절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의 소통 공간, 소통 작업, 소통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이후 인생을 40년, 50년 살아가는 데 있어 큰 자산이 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역사 교사나 강사를 꿈꾸는 대학생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로 최 강사는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는 이유, 그리고 가르치는 방식에 대한 자기중심을 잘 잡는 것이라 조언했다. 최 강사가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고 그 인물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이다. 이어 그는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 점수를 잘 받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죠”라면서도 “그것이 목표가 돼선 안 되고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줘야 해요”라고 덧붙였다.

2016년 새롭게 둥지를 튼 인강 사이트인 ‘이투스(ETOOS)’에서 최 강사는 초, 중, 고등학생을 비롯해 성인을 위한 각각의 강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일부 강의나 맛보기 강의만이 아닌 모든 수업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인강 강사가 인강을 무료로 배포한다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한 시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최 강사가 대학 시절부터 쌓아온 신념과 ‘동사의 꿈’이 담겨있다.


무료 강의로 동사의 꿈을 꾸다
그는 ‘동사의 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직업이라는 명사로 누군가의 꿈을 규정하는 대한민국 문화에 의문을 던진다. 그는 “우리가 잘 아는 역사 속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어요”라며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했던 동사의 꿈을 꾸던 사람들이라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최 강사는 동사의 꿈을 꿨던 대표적 역사 속 인물로 북간도 지역으로 독립운동을 떠났던 김약연 선생의 이야기를 꺼냈다. 김약연 선생은 명동 학교를 운영하며 나운규, 송몽규, 윤동주 등의 인물을 키워냈다. 최 강사는 “김약연 선생의 유언은 ‘내 삶이 곧 유언’이라는 거예요”라며 “얼마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이 있었기에 내 삶이 곧 유언이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동사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최 강사의 특기는 역사 속 개념을 정리해서 감동과 함께 전달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그의 능력으로 누구든지 무료로 인강을 들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했다. 누군가의 삶에 건강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을 만들고 활성화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그러면 언젠가 그의 마지막 삶을 정리할 때 그도 김약연 선생처럼 삶을 일생으로 답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최 강사가 보는 대한민국의 역사 산업은 희망적이다. 최 강사는 “역사 쪽으로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이전보다 환경이 좋아졌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우리나라의 GDP(국내총생산, Gross Domestic Product)는 계속 성장하고 있으며 선진국의 사례에 따르면 GDP가 올라갈수록 문화와 역사 분야에 관심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주최하는 행사 대부분은 역사와 관련돼 있어요”라며 “역사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질 거예요”라고 말했다.


누구나 쉽게 역사 속의 인물들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최태성 강사의 목표는 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다. 글보다 영상이 익숙한 세대의 시대가 도래했다. 최 강사는 “이러한 세대에게 한국사를 통해 건강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제 최종목표죠”라고 포부를 밝혔다.
처음부터 끝까지 최 강사의 역사에 대한 신념은 단단했다. 바로 역사는 ‘사람을 만나는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시험을 위해 암기를 하는 한국사가 아닌, 한 번쯤은 그 속의 인물들에게 진솔하게 고민을 터놓고 그 해답을 찾아보기를 바란다. 최 강사의 ‘동사의 꿈’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동사의 꿈을 꾸게 하는 기폭제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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