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의 뜨거웠던 그 순간을 뒤로하고 차가운 서대문형무소의 문이 열린다.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멍들어 부은 눈을 힘겹게 뜨는 수감 번호371,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 등장한다. 3·1 운동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유관순. 3·1 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는 그 이름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꾸준히 제작됐다. 그 중에서도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올해가 3·1 운동 100주년을 맞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여러 작품과는 달리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뤘기 때문이다.

3평 남짓한 좁은 옥사 안에는 유관순 열사를 포함한 여러 여성이 수감돼 있었다. 추운 겨울 8호실에서 꽁꽁 얼어버린 갓난아이의 기저귀를 말리기 위해 차가운 기저귀를 옷 속으로 집어넣고 각자의 옷에서 솜을 꺼내 아이의 배냇저고리에 채워 넣던 여성 수감자들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다.

영화관에는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관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 속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인식 수준은 높지 못하다. 유관순 ‘열사’라는 정식 명칭 대신 유관순 ‘누나’ ‘할머니’ 등 격식 없는 호칭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남성 독립운동가의 이름 뒤엔 ‘의사, 열사, 선생’ 등 격식 있는 호칭이 따르는 것에 비하면 유관순 열사의 이름 뒤에 붙는 호칭은 너무나 친근하다. 친근감이라는 핑계로 성차별적인 태도가 용인됐던 것이다.

현재 재건축된 서대문형무소 여옥사에 들어서면 수많은 여성들의 사진을 만나볼 수 있다. 수많은 사진들 속에서 유관순 열사의 얼굴만 알아채던 필자가 부끄러웠다. 여옥사에 임신을 한 수감자가 있었다는 사실도, 3·1 운동 1주년에 옥중에서 들불처럼 번지던 만세운동의 중심에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그 전엔 알지 못했다.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자신들이 만든 역사 속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했다.

‘하나뿐인 목숨을 내가 바라는 것에 마음껏 쓰는 것’이 자유라며 자유를 원하던 유관순 열사의 목소리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던 8호실 속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우리는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숙대신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