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교수의 신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를 재미있게 읽었다. 하라리 교수의 전작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서 인류 생존과 발전에 대한 해석에 설득력을, AI로 대변되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새로운 세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던 많은 독자들이 아마 기대를 가지고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읽었을 것이다. 하라리 교수의 3부작과 함께 연전에 읽었던 배철현교수의 「신의 위대한 질문」「인간의 위대한 질문」 그리고 작년에 나온 「인간의 위대한 여정」이 떠올랐다. 몇 개의 주제들, 예를 들면 신의 존재나 종교의 정의에 대해서 두 석학은 닮은 듯 다른 시각을 내보이고 있지만 두 저자 모두 다양한 분야의 연구결과를 폭넓게 섭렵하여 내놓은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CNN 인터뷰에서도 하라리 교수는 “AI 등의 발달로 인류사회는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는 기로에 서 있다. 이 시점에서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우리 스스로가 잘 모른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특히 다가오는 포스트휴먼·트랜스휴먼 시대에 우리는 어떤 존재양식을 가지게 되고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 될지, 지난 2천여년 동안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온 인본주의는 어떤 차원으로 진화할 것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시대마다 저마다의 숙제가 있겠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사는 우리는 ‘사피엔스’로서 생존하고 번영했던 시대를 졸업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자연현상과도 같아서 개인이나 조직이 제어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제 질문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과학기술의 힘을 어떻게 활용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있을 것이다. 두 저자가 공통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사람들 간의 협력이다. 하라리 교수는 다양한 단위의 협력을 이루어낸 인간의 특성에 주목하며, 이러한 협력 능력이 이제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더욱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이제는 단일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기후변화나 난민 문제, 빅테이터 및 AI가 가져올 변화 등에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전 지구적인 협력이 필요하며 인류적인 집단지성이 발휘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궁극적인 수준의 협력이 가능한 것일까? 배철현 교수는 인류의 가치체계를 형성해 온 종교의 시원과 기여에 대해 고전문헌학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성찰한다: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한 존엄성의 기초다. 신의 형상을 지닌 동료 인간들을 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신의 위대한 질문, p. 485). 이처럼 담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공유하며 믿는 힘이 인간들의 협력, 다른 종들과는 차원이 다른 유연한 협력, 대규모의 협력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배철현 교수는 “인간은 공부하는 동물이다. 인류는 자신을 둘러싼 대상을 연구하고 공론화해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의견을 비교하고 질문하고 대화하는 독특한 문화적 진화를 거듭해왔다(인간의 위대한 여정, p. 61)”며 인류만이 할 수 있는 협력의 근거를 제시한다. 구체적인 방법은 아니라며 실망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두 인문학자에게 얼마나 실무자의 면모를 요구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지구적인 협력을 말하면서도 “우리시대의 거대한 혁명들과 개인의 내적인 삶이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하라리 교수, “아무리 훌륭한 사상과 종교, 과학과 예술이라 할지라도 나 자신과 운명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그것들은 모두 소음이나 낙서에 불과하다”는 배철현 교수. 흥미롭게도 두 석학은 명상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배철현 교수는 유학 초기 막막했던 시기에 매일 아침 15분의 명상으로 그 날의 할 일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하라리 교수는 장, 단기 명상을 통한 집중력과 명징함으로 저서를 낼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근래 명상의 효능을 재조명하는 임상연구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두 석학의 체험이 생생하게 들린다. 두 저자의 책들로 행복한 순간이 많았다. 감사하다.

 

강애진 영어영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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