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주관이 약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어릴 적 꿈인 ‘작가’를 주위 사람들의 만류로 접을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찾은 꿈은 ‘언론인’이었다. 특별한 주관 없이 살아온 필자에게 중립을 지키며 세상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일이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숙대신보에 들어와 취재를 하고 기사를 직접 쓰면서 이런 생각이 얼마나 얕았는지 깨달았다. 처음 필자가 맡은 기사는 졸업생의 본교 도서관 이용에 관한 기사(본지 제1353호 ‘졸업생 본교 도서관 이용 어려워’참고)였다. 필자는 기사를 쓰면서 졸업생과 도서관 사이의 상반된 입장을 기사로 전달해야했다. 처음에는 졸업생과 도서관 양쪽의 입장만 존재하는 줄 알았지만 용산구 주민, 재학생 등 생각보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사안이었다. 그 사이에서 필자는 갈팡질팡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의 입장을 어느 정도로 전달해야 할지, 어떤 순서로 전달해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필자는 이 기사를 통해 결국 모든 일에 있어 결정권은 필자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태까지 19여 년의 기간 동안 자신만의 주관 없이 살아온 필자를 ‘소심하다’라는 말로 포장하며 살아왔지만 숙대신보에서의 경험은 진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게 해줬다. 설문조사를 위해 강단에 서서 설문에 대해 설명하고 설문지를 나눠줄 때 필자의 모습도, 인터뷰를 부탁하기 위해 전화를 걸고 대면 인터뷰를 하는 필자의 모습도 이전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경험이었다. 숙대신보에서의 경험을 통해 필자는 여태껏 스스로 자신을 ‘소심하고 주관 없는 사람’이라는 틀 속에 가둬놓고 있었음을 비로소 인지할 수 있었다.

이제 필자는 더 이상 틀 속에 필자 자신을 가둬 두지 않기로 했다. 생각보다 ‘나’라는 사람은 평소보다 더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기사를 쓰다보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상황에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필자는 이를 깨닫게 해준 숙대신보에서의 경험을 어느 상황에서도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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