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대신보에 들어오기 전, 필자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이었다. 필자의 일상은 시위였고, 항의는 생활이었다. 필자는 시위에 나가면 기자에게 둘러싸이는 것도, 필자의 사진이 담긴 기사가 나가는 것에도 익숙했다. 필자의 말과 행동이 왜곡돼 기사로 나왔을 때는 분노하기도 했다. 기사의 방향이 곧 필자를 보는 사회의 시선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회를 대변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큼을 의미한다.
  필자는 약 2주간의 숙대신보 활동을 하면서 기사의 힘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필자가 맡게 된 첫 기사는 본지 제1352호 ‘약학대학 교수 시위 진행돼’였다. 다루기 어려운 주제인 만큼 취재 과정도 수월하진 않았다. 또한 기사를 작성하면서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 문장을 거듭 바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한 쪽의 주장을 제대로 담지 못해 본지 제1353호에서 해당 기사를 정정해야 했다. 다른 무엇보다 필자 본인에게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이 기사 작성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기사의 힘이 강한 만큼 기자는 그에 걸맞은 책임을 지녀야 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기사는 여론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다. 필자는 기자라는 이름에 맞는 책임을 질 필요가 있었다.
  중립을 지키는 것은 여전히 필자에게 가장 힘든 일이다. 필자는 어떤 의제에 대해서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운동권인 탓도 있었고, 세상에 완전히 중립적인 사람은 없다는 사회과학의 기본 명제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탓도 있었다. 여성부 기자로 들어온 것도 주요 관심사인 페미니즘(Feminism)에 대한 기사를 많이 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상대적으로 집중을 받지 못하는 근본주의적 페미니즘에 입각한 여성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필자의 관심사보다 기자로서의 책임을 내세울 필요가 있다.
  필자는 앞으로 공정한 기사를 쓰기 위해서 더욱 노력할 것이다. 기사로 인해서 부당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도록 신중을 기할 것이다. 필자를 향해 눌린 셔터(Shutter)는 이제 필자의 손에 들어왔다. 필자는 취재 과정이 힘들지라도 취재증을 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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