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지난 여름, 노회찬, 황현산, 두 분이 우리 곁을 떠났다. 세상에 대한 따스한 철학과 깊이 있는 시선을 지닌 이의 빈 자리가 크다. 2017년 국회방송 <TV 도서관에 가다>에 『밤이 선생이다』가 소개되면서 두 분이 이 책을 두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여야 5당대표 청와대 초청 자리에 참석했던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께는 『82년생 김지영』을, 김정숙 여사께는 이 책을 선물로 드렸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2013년 출간되었던 『밤이 선생이다』가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다시 불러 일으켰다.


『밤이 선생이다』는 문학평론가이자 불문학자인 황현산 선생이 삼십여년 동안 썼던 글과 신문 칼럼을 묶은 첫 산문집이다. 사소한 에피소드를 해석하는 깊은 사유와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들이 빛나는 책이다. 노회찬 의원은 이 책에 대해 “읽기 불편한 책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굉장히 커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고 했다. 성찰을 잃어버린 시대, 독자를 사색의 장으로 이끄는 묵직함 울림이 있는 책,『밤이 선생이다』이 그러하다.


좋은 책은 좋은 삶만큼이나 우리를 일깨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고 여운이 있는 책 『밤이 선생이다』는 제목부터 생각을 이끈다. “낮이 이성적, 합리적, 사회적인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자 치유의 시간”이라고 황현산 선생은 말한다. 노회찬 의원은 “밤이 되면 낮에 만난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하루를 정리한다”고 했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연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를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밑줄을 그었던 구절들이 많다. 그 가운데 두 부분을 나누고자 한다. “삶을 깊이 있고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은 우리가 마음을 쏟기만 한다면 우리의 주변 어디에나 숨어 있다. 매우 하찮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내 삶을 구성하는 것 하나하나에 깊이를 뚫어 마음을 쌓지 않는다면 저 바깥에 대한 지식도 쌓일 자리가 없다. 정신이 부지런한 자에게는 어디에나 희망이 있다고 새삼스럽게 말해야겠다.” 이 대목을 읽으며, 거창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 사소히 여긴 일상의 의미를 돌아봤다.


또한 “우리에게 과거 상처는 너무 악착스럽고, 미래에의 걱정은 갈수록 두터워질 뿐이다. 그래서 현재는 그만큼 줄어들고 눈앞의 삶을 깊이 있게 누리는 것이 용서되지 않는다. 과거의 상처가 미래의 걱정거리로 확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학은 지금 이 자리의 삶에 자신을 자유롭게 바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마련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해 왔다. 대학의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 자유의 시간과 공간이 없이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를 읽으면서는, 이 시대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 봤다.


황현산 선생이 작고하기 전에 발간된『사소한 부탁』에서, 그는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 특히 먼 나라의 문학일 뿐인 프랑스 문학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늘 고뇌해 왔다. 내가 나름대로 어떤 슬기를 얻게 되었다면 질문과 고뇌의 덕택일 것”이라고 했다. 질문과 사색의 결과로 쓰여진 그의 글들은 우리에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숙제를 주었다. 그리고 진보정치의 상징 노회찬 의원의 평범하지만 비범했던 말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신념의 산물이었다. 두 분은 글과 말처럼 살다 갔다.

 
버트런드 러셀은『행복의 정복』에서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 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에 비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행복을 강조하였다. 계속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책, 우리를 변화시키는 책은 ‘선생’이다. 교양은 스스로의 힘으로 계속 쌓아가는 것이다. 좋은 책과의 만남이 올바른 삶으로 이어진다면, 조금 더 살만한 세상, 함께 사는 공동체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기 교양교육연구소가 마련한 <독서산책>에 우리 숙명인들이 참여하면서 대학에서의 배움이 더욱 깊어지고 확장되길 기대한다. 바람을 보니 이제 가을이다.

 

신희선 기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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