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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쓰는 작가, 박성호
김희란  |  smpkhr96@sookmy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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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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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는 매일이 여행이 되시길’.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매일을 여행처럼 살아가는 청년이 있다. 바로 박성호(남·27) 여행 작가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하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모두가 반대했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에게 온전한 자신을 찾게 된 긴 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좁은 학원가를 벗어나 지구 반대편으로
대치동에서 자란 박 작가는 중, 고등학생 시절 내내 여느 학생들과 다름없이 학원에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그는 “수학, 영어, 과학, 다독, 수영 학원 등 16개의 학원에 다녔어요”라며 “학창시절 학원에 다니는 것 말고는 다른 활동은 하지 않았죠”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빼곡한 일정을 모두 소화한 그에게 주어진 보상은 카이스트 입학이었다. ‘좋은 대학’이라는 원하던 목표를 이뤘다는 생각에 처음엔 뿌듯했지만, 박 작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대학도 고등학교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원이 기숙 생활을 하는 카이스트는 수업이 오후 10시까지도 열렸다. 학생들 간 경쟁도 매우 치열했다. 박 작가는 “2011년에 학교에서 여섯 명이 자살했어요”라며 “당시 장례식장을 다니며 좋은 대학만이 옳은 방향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죠”라고 말했다. 성적 때문에 목숨을 잃는 친구들을 본 그는 대학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했다.

이후 박 작가의 입대는 그가 새로운 세상에 들어서게 된 계기가 됐다. 박 작가는 항상 있던 곳에서 벗어나 군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곧바로 적응했다. 박 작가는 “그동안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작은 문제도 삶 전체를 덮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라면서 “군대라는 세상에 오니까 고민했던 문제들이 인생 전체로 보면 작게 느껴진다는 것을 깨달았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경험을 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여행을 결심했어요.”라고 말했다. 

여행을 결심하며 제대한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곧바로 여행을 떠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는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현실 도피를 하기는 싫었어요”라고 말했다.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도망치듯 여행을 가는 것이 부끄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기로 한 그는 학업에 몰두했다. 그는 복학 후 두 학기 동안 과 수석을 차지했다. 이후 ‘이제는 여행을 가도 되겠다’고 결심한 박 작가는 호주로의 워킹 홀리데이(Working Holiday)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박 작가가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 건 워킹 홀리데이를 결심한 지 고작 한두 달이 지난 후다. 그는 “갑작스럽게 떠나기엔 호주가 가장 적합했어요”라며 “워킹 홀리데이 대상을 선발하는 타 국가들과는 달리 호주는 신청하면 무조건 갈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박 작가는 오직 1000달러, 원화로 80만 원만 가지고 호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인 브리즈번에 갔다. 그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가장 많이 했고 서빙, 요구르트 파는 일, 나이트클럽에서 맥주도 파는 일 등 안 해본 일이 없어요”라며 웃었다. 시급이 대략 16,000원부터 시작하는 호주에서 박 작가는 두세 가지 일을 병행하며 돈을 빠르게 모을 수 있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그는 호주의 고층 빌딩인 ‘페스티벌 타워(Festival Tower)’에 머물렀다. 그는 “빌딩 안에는 사우나, 헬스장도 있고 그 앞엔 인공해변도 있었어요”라며 “그곳에서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죠”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박 작가는 호주에 머물며 요트, 보트를 배우고, 섬에 놀러 가 야외 스포츠도 즐기는 등 여러 경험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뉴질랜드의 밤하늘이 밝힌 새로운 세상
호주를 떠나 그는 뉴질랜드로 여행을 갔다. 뉴질랜드와 호주가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며 뉴질랜드에 도착했지만, 그는 곧바로 자기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뉴질랜드의 ‘테 카포’라는 작은 마을에서 밤하늘의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을 봤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호주와 비행기로 세 시간 거리의 가까운 위치에 있는 뉴질랜드지만, 밤하늘을 보니 호주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라는 걸 느꼈어요”라며 “더 많은 나라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라고 말했다.

그는 더 넓은 곳을 향한 열망과 함께 호주에 돌아왔다. 박 작가는 호주로 돌아오자마자 ‘케언스’로 향했다. 박 씨는 앞으로의 호주 생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바비큐 파티, 요트 등을 생각했지만 전혀 새롭지 않았다. 이미 브리즈번에서 다 경험해본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숙소에서 만난 영국인 친구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난 바나나 농장에 있었는데 거긴 진짜 지옥이었어”라는 말이 박 작가의 마음에 꽂혔다. 박 작가는 다음 날 바로 짐을 챙겨 바나나 농장이 있는 시골로 내려갔다. 바나나 농장의 환경은 열악했다. 무더운 날씨에 컨테이너 안에서 수많은 벌레들과 함께 살아야 했다. 바나나 농장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는 “50kg에 달하는 바나나 송이를 어깨에 메고 일했어요”라며 “일주일만 일해도 손이며 장갑이며 남아나는 데가 없었죠”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100일 동안 일하며 천만 원을 모을 수 있었다. 그가 처음부터 세계 일주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으나 아니었지만 바나나 농장에서 힘들게 번 돈을 한국에 그냥 가져오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돈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하던 그는 세계 일주를 결심했다.

세계 일주를 떠나기 전날 그는 마을 뒷산에 올라 그가 지냈던 마을을 바라보며 전야제를 보냈다. 그는 “그때 딱 ‘내가 진짜 내 인생 주인공으로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그 순간을 ‘진짜 자신’을 찾은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1년간 6대륙 20개국을 도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박 작가는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같은 물가가 저렴한 나라들 위주로 다녔다. 그중 그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세렝게티였다. 수많은 동물이 돌아다니는 세렝게티에서 신비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버펄로, 사자, 기린, 코끼리 등 동물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세렝게티에서 일인용 텐트를 치고 잔 경험은 제게 큰 힘을 느끼게 해줬어요”라며 “한국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물론 여행하며 항상 좋았던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목숨을 잃을 뻔한 순간도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택시 강도에게 납치를 당한 적이 있어요”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칼을 들이댄 강도들에게 모든 돈을 뺏긴 후 강도에 의해 발로 차여 택시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는 “삶에서 당장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라며 “이런 경험이 타인의 시선에 상관없이 나만의 여행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박 작가가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은 여행 동안 마주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다. 그는 “여행 전에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만이 옳은 삶이라고 생각했어요”라며 “여행 중에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니 꼭 한 가지 모습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제가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이 다채로워질 기회를 얻게 된 거죠”라며 여행이 주는 교훈을 강조했다. 

「바나나 그 다음,」긴 여행의 마무리
박 작가가 여행을 떠나기 전엔 여행을 책으로 쓸 생각이 없었다. 글과 거리가 먼 물리학도였던 그가 책을 쓰기로 한 이유는 여행 중 썼던 메모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은 경험은 잘 기억하는 반면 자신이 그 당시에 했던 생각은 쉽게 잊어버려요”라며 “여행 중 했던 생각들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기록하기 시작했죠”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그는 메모들을 책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여행 작가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부모님은 박 작가가 안정적인 진로를 선택하길 원하며 그의 꿈을 반대했다. 그는 “부모님을 실망하게 했다는 사실에 절망감이 들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출판사 또한 그의 책을 출판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여행 작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글을 쓰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출판사 네 곳에서 연락이 왔다. SBS 스페셜 방송에 출연한 덕이었다. 그 결과 작년 12월에 <바나나, 그다음>이라는 여행 에세이를 출간할 수 있었다. 그는 “여행 작가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에요”라며 “여행 작가를 희망한다면 주변의 반대나 출판의 어려움을 견딜 굳센 각오가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박 작가는 현재 여행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학교, 회사, 교육청 등 여러 곳으로 강연을 다니는 그는 “여행은 연령대 상관없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망인 것 같아요.”라며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들어주는 게 감사하죠”라고 말했다. 그는 강연에서 그의 경험을 통해 사람들에게 ‘진짜 자신’을 찾은 과정을 전한다. 여행을 떠날 여유가 있음에도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박 작가는 “여행을 막상 가면 실제로 겪는 어려움은 가기 전에 느낀 두려움의 반의반도 안돼요”라며 “여행을 가기 전에 미리 두려워할 필욘 없죠”라고 조언을 전했다.

여행 작가로서 성공한 그에게도 여전히 꿈이 있다. 그는 “진로, 교육의 일을 하고 싶어요”라며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접했기 때문에 저의 경험이 진로 지도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12월까지 강연 활동을 마치고 내년 1월부터 총 30개국을 여행할 계획이다. 그는 새로운 여정을 통해 또 다른 경험을 쌓을 준비를 하고 있다.

박 작가는 여행 전 자신의 모습에 대해 “내가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것 자체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볼지를 먼저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행 후 그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시선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자신의 진정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박 작가는 수많은 선택을 앞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강한 신념을 가지길 바라요”라며 “어떤 선택을 앞두고 자신이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를 지속해서 고민하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해요”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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