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칼럼]

필자는 이번학기 숙대신보와 학과 학생회 등의 활동으로 바쁜 학기를 보냈다. 정신없는 매하루를 보내던 필자에게 지난 3월은 유독 힘들게 다가왔다. 사람을 미워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필자는 학생회 활동의 일환으로 회의나 학과 행사를 진행할 때면 후배와의 의견 충돌이 자주 생기곤 했다. 학과 MT(Membership Training)를 갈 때, 강의가 늦게 끝나 5시에 함께 출발할 수 없는 신입생을 위해 후발대를 인솔할 학생회 임원을 배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후배는 “학생회 임원의 인원이 적기에 인솔자를 배정한다면 인력이 부족할 수 있다”며 “또한 학생회 임원들도 초행길이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반면 필자는 MT를 주관하는 학생회가 총책임자이기 때문에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 인솔자가 있어야 함을 주장했다. 찬반에 대한 대화가 팽팽하게 오가던 중 후배는 “선배가 정 그렇게 생각하면 제가 인솔할게요”라는 말을 했다. 필자는 인심을 쓴다는 듯이 말하는 후배의 태도에 기분이 언짢았다. 이날의 갈등은 필자가 후배에게 나쁜 감정을 갖는
계기가 됐다.

이후에도 필자와 후배는 학과 잠바 공동구매 신청 및 배부, 학생회 회의 시간 조율 등의 문제로 끊임없이 마찰을 빚곤 했다. 잦은 갈등은 필자가 더 이상 후배와 얼굴을 마주하고 의견을 나누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끔 했다. 이런 후배가 싫다는 생각은 후배가 필자와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을 내면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지난 15일(화) 후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남아 있는 상태로 둘이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처음에 필자와 후배의 단체 채팅방엔 형식적인 내용의 메시지만이 가득했지만, 이내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과제를 하느라 힘들 하루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오갔다.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하다 보니 차츰 감정이 풀려갔다.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니 후배의 과거의 발언이 ‘인심을 쓴다는 듯한 행동이 아닌 사실은 타인을 배려해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배에 대한 나의 편견 때문에 후배의 모든 말엔 나쁜 의도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필자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미움’은 사람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없게 만든다. 필자는 바빴던 지난 3월 미움이라는 감정이 씌우는 색안경을 경험했다. 미움으로 생긴 편견은 한 사람의 모든 말과 행동의 의도를 오해할 만큼 강력했다. 앞으로는 감정에 치우쳐져 한 사람을 판단하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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