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인터뷰]

 

사람들에게 생소한 옻칠공예를 그녀의 작품을 통해 알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옻칠공예 브랜드 ‘장이’의 이현경(공예 04졸) 대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장이에서는 한국적 소재인 옻과 자개를 활용해 실생활에 사용 가능한 작품을 만든다. 사람들을 위해 옻과 자개를 이용한 ‘쓰임’있는 물건을 제작하는 이 씨. 본지는 용산구에 위치한 장이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옻칠로 꿈꾼 미래 현실이 되다
어릴 적부터 꾸준하게 미술을 배운 이 씨는 대학교 때 처음으로 칠을 접했다. 본교 공예과에 재학 중이던 이 씨는 사용하기 어려운 옻 대신 옻이 오르지 않는 *캐슈(Cashew)를 사용해 처음 칠을 하는 방법을 배웠다. 칠에 매력을 느낀 이 씨는 본격적으로 옻칠 공예를 공부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씨는 “옻칠이 지닌 색상, 빛깔, 냄새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라고 옻칠에 흥미를 느낀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 씨는 옻칠을 ‘연인’이라고 표현한다. 옻칠은 연인처럼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옻칠은 재료의 민감한 성분 탓에 작품을 만들 때 원하는 결과를 내는 것이 어렵다. 작품을 만들 때 온도와 습도를 알맞게 조절해야 하며, 두껍게 칠하면 칠이 쪼그라질 수 있기 때문에 칠을 입히는 두께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칠을 말리는 동안에도 색이 변할 위험이 있어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이 씨는 이런 인고의 과정이 옻칠의 특색이라고 생각한다. 이 씨는 “원하는 대로 작품이 완성되지 않을 땐 초조하기도 해요”라면서도 “자연의 섭리처럼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 옻칠의 매력이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녀는 “이렇게 만든 작품을 사람들이 행복해하며 구매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라고 덧붙였다.

이 씨는 대학원에 진학한 지 3학기째부터 본격적으로 옻칠 공예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대학 시절부터 키워온 창업에 대한 꿈이 이뤄진 것이다. 이 씨는 본교 청파제에서 열린 공예과 상품전에 참여해 그녀가 직접 만든 옻칠 장신구를 판매했다.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이 만든 작품을 선보인 순간이었다. 이 씨는 “사람들이 제가 만든 공예품을 예쁘다고 칭찬할 때 보람을 느꼈어요”라고 당시의 소감을 말했다. 이어 “가끔 제가 만든 장신구를 착용한 사람들을 마주치면 인사를 건네고 싶을 정도로 반가웠죠”라고 덧붙였다.

이 씨는 당시 상품전과 공모전을 통해 제작비를 벌고 이를 장이를 홍보하는데 사용했다. 작품을 알리는 책자를 만들어 백화점과 갤러리에 배포했다. 이 씨는 “옻과 자개라는 재료의 특색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제가 만든 공예품에 관심을 가졌어요”라고 말했다.   

장인정신, 현재의 ‘장이’를 만들다
장이라는 브랜드명은 이 씨의 멘토가 말한 “넌 진정한 쟁이가 돼라”는 한마디로부터 탄생했다. 이 씨는 그 말에 담긴 사명감이 마음에 와닿아 ‘전문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장이를 브랜드명으로 정했다. 창업 초기엔 옻칠공예에 적합한 작품 생산 방식을 찾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 옻칠공예는 수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창업 초반엔 세 명의 직원과 장이를 운영했기 때문에 부족한 인력으로 대량생산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와중 문재인 대통령이 귀빈 선물로 내놓은 장이의 텀블러가 인기를 얻으면서 텀블러를 제작하기 위해 1년 동안 대량생산을 진행했다. 대량생산은 외주업체에 옻칠 공예품에 대한 작업 방식을 설명하고 이를 장이가 관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대량생산 시스템을 갖추기 전에 공장에 제품 제작을 맡겨 주문한 300개의 텀블러 중 270개가 불량품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공장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제품이 불량인 이유를 하나씩 설명했다. 이 씨는 “저희 작품은 대량생산으로 제작하더라도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품질의 기준은 정확히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라며 “애써 제작한 작품이 정확한 검수 과정을 거치지 않아 제품의 질이 떨어졌다고 평가받는 것은 치명적이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이 씨는 품질이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지금도 공장에서 생산된 모든 제품을 하나씩 살펴보며 검수한다.

이 씨는 많은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공예품을 제작한다. 장이는 옻칠을 활용해 그릇이나 수저, 텀블러를 제작하고 현재 이를 판매하고 있다. 옻칠과 자개를 함께 이용한 장신구도 제작한다. 최근에는 평창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 때 사용할 귀빈을 위한 기념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하지만 창업 시작할 당시엔 옻과 자개를 활용한 공예품이 대중화돼 있지 않아 우여곡절을 겪었다. 생소한 소재라 갤러리나 백화점에서 작품을 홍보할 때 작품에 대한 소개보다 재료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해야 했다. 그녀는 자개농에 붙어있는 자개를 예시로 들며 작품에 사용된 재료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전시회에 직접 찾아가 기존 작품과 함께 전시할 수 있는지를 물으며 장이를 알려야 했다.

제작한 제품의 가격을 정할 때도 어려움이 있었다.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제품의 특성상 제작 시간이 오래 걸려 적절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씨는 “옻칠공예품은 특별한 사람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에요”라며 “옻칠공예품을 많은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런 이 씨는 활동 범위를 넓혀 국내와 해외에서 전시회도 개최했다. 올해 세 번째로 중국의 북경과 심천에서 전시회를 연 이 씨는 “옻칠과 자개로 만든 장식품이 중국에서 많은 호응을 받아 고정 고객도 생겼어요”라며 뿌듯해했다. 전통적인 재료들이 해외에서 이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재료가 전통적이기 때문에 이 씨는 공예품을 만들 때 기법이나 근간은 전통에 둔 채 이를 현대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녀는 “옻칠과 자개라는 재료 자체가 전통적이기 때문에 작품을 봤을 때 고루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도록 했어요”라며 “옻칠과 자개로 만든 제품이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사용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전통적인 느낌의 재료를 현대 사람들도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 가능하게 만들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옻칠 공예품을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활용성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신념이자 목표다.
 
성장의 밑거름이 된 세 번의 프로젝트

이 씨가 작품을 만들 때 중요시하는 것은 활용성과 고객이다. 2014년, ‘아모레퍼시픽(Amore Pacific)’은 자개를 소재로 콤팩트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그녀의 공방이 성장한 계기가 됐다.

프로젝트에서 장이는 콤팩트에 대한 디자인을 진행할 팀으로 선정되기 위해 다른 팀과 3차례 경쟁했다. 결국 이 씨가 속한 장이 팀이 최종 프로젝트 팀으로 결정됐다. 이 씨는 “최종적으로 우리 팀이 우승했을 때 자신감이 생기며 기뻤죠”라고 말했다.  이 씨는 콤팩트의 내용물인 화장품에 매화 성분이 들어간 점을 이용해 매화를 콤팩트 디자인의 주제로 결정했다. 그 후 두 달 동안 수정 과정을 거쳐 디자인을 선별하고 최종적으로 컴퓨터 픽셀을 확대한 모양의 매화 한 송이를 디자인했다.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지만 이내 그녀는 난관에 부딪혔다. 디자인을 할 때 생산방식을 고려하지 않아 디자인한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공장이 없었던 것이다. 프로젝트가 무산될 위기에 처한 그녀는 아모레퍼시픽 측에 본인이 생산을 맡겠다는 의견을 밝혔다.그녀의 용감함은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3~4개월간 수작업으로 진행해 완성한 만 5,000개의 콤팩트는 1주일 만에 완판됐다. 아모레퍼시픽 측에선 이 씨에게 재계약을 요청했다. 이 대표는 “13년간 아모레퍼시픽이 진행한 프로젝트에 참여한 제작자 중 재계약을 한 것은 저희가 최초였어요”라며 “당시엔 믿어지지 않았죠”라고 말했다.

이어서 진행한 콤팩트 디자인은 전통기법 중 침금을 이용한 것이었다. 침금은 칠을 그어서 스크래치가 난 부분에 금속분을 채워 넣는 방식이다. 당시 침금 기법을 할 수 있는 업체가 없어 두 번째 프로젝트도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디자인에 사용된 주요한 색은 청록색과 보라색이었다. 콤팩트에 그 해에 유행하는 색에 맞춘 색조 화장품이 들어가 있는 것을 활용한 것이다. 이 씨는 “처음에는 난해한 디자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어요”라며 ”하지만 금속분과 침금기법을 이용해 화려함을 강조해 주목받을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이 씨는 장이를 ’자식‘이라고 표현한다. 그녀의 꿈은 장이를 더욱 성장시키는 것이다. 현재 장이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모두 그녀의 손을 거쳐 수공예로 작업한 것이다. 이 씨는 “정확한 체계를 갖춰 제품을 제작하고 장이를 홍보하고 싶어요”라며 “꿈을 더 크게 가져서 장이를 큰 기업으로 만들고 싶어요”라며 이 씨가 가진 계획을 말했다. 이 씨는 20대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흔한 말일 수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행복과 흥미를 좇아서 지금의 장이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씨는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캐슈(Cashew): 옻나무과의 상록 교목. 교과과정에서 옻이 오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옻을 대신해 사용된다.

▲ 옻칠과 자개를 활용해 제작한 옻칠함이다.

 

▲ 아모레퍼시픽(Amore Pacific)의 브랜드인 설화수에서 한정판으로 출시된 콤팩트다. 왼족부터 1년차, 2년차, 3년차 프로젝트에서 제작된 콤팩트로, 매화를 주제로 매년 다른 디자인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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