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숙케치]

 

지난여름방학에는 인천과 제주도로 건축기행을 간 데 이어 겨울방학을 맞아 경주 건축기행 겸 유적지 답사를 다녀왔다.

경주의 첫인상은 우리에게 웃음을 안겨주었다.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내려서 게스트하우스로 걸어가는 길가의 고분들은 잘 만들어진 국립공원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완전히 대로변 옆에 있다. 그 모습이 퍽 당황스러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들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3층을 넘지 않는 건물들의 높이였다. 다들 낮고 아담하다.

저녁에 도착해 다음날 아침부터 답사를 시작했다. 7시 반, 방학 시작한 이래로 제일 일찍 일어났다. 동궁과 월지에서 눈에 띈 것은 대략 서울 가로수 굵기의 4배만 한 거대한 나무들이었다. 높이도 높고 굵기도 굵었다. 동궁과 월지는 왕이 쉬며 놀던 곳인데 이 큰 나무들이 그때는 없었거나, 새싹이었거나, 작은 묘목이었을 거라고 상상하니 마음이 새초롬해졌다. 이 나무들과 경주 박물관에서 본 여러 유물들이 신라시대의 1000년, 우리나라의 근간이라고 생각하며 이 모습이 먼 미래까지 보존되기를 바랐다. 황혼이 저무는 시간에는 황룡사가 불타고 남은 터에 가서 지는 해를 감상했다. 이곳도 건재했으면 좋으련만, 아무것도 없고 주춧돌만 남은 곳에 앉아 있자니 황망한 마음이 들었다.

2박 3일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는 불국사와 석굴암이었다.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2.2km라고 쓰여 있어서 걸어가기로 했는데 아뿔싸 옆으로가 아니라 위로 2.2km이었다. 뜻밖의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교훈을 두 가지 얻었다. 첫째, 아무리 힘들어도 더 할 수 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도 조금만 앉아서 쉬면 다시 일어나서 갈 수 있었다. 둘째, 인생은 무상한 것. 올라갈 때는  1시간 걸려서 죽어라 갔는데 내려올 때는 터덜터덜 30분 만에 왔다.

이번 여행에서는 소원을 참 많이 빌었다. 새해가 좀 지나긴 했지만 이번 해는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목표도 세우고 다짐도 했다. 돌이켜 보면 작년까지는 아무 생각이 없거나 대학에 입학하자는 목표 하나로 한 해를 버텼던 것 같다. 힘든 일이 있어도 대학에 들어가면 괜찮겠지,라고 안일하게 지내왔는데 이번 여행에서 바라본 신라의 풍경과 과정에서의 시행착오를 통해 여러 가지 깨달음을 얻으며 새로워진 나를 만났다.


김지효 (환경디자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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