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가게에서 환불을 받는 상황, 애인과의 데이트, 여행 준비, 퇴근 후 마시는 맥주 등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마주할 수 있는 작품들이 있다. 위에 언급된 장면들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기획하는 ‘주식회사 칠십이초(이하 칠십이초)’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인 「두 여자」 「바나나 액츄얼리」 「오구실」 속의 내용이다.

평범한 일상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까. 본지는 칠십이초에서 다양한 작품을 집필한 이민혜(여·36) 작가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많은 사연을 통해 일상의 중요함을 깨닫다
칠십이초에서의 다양한 웹 드라마 집필로 유명한 그녀는 KBS 라디오 ‘최강희의 볼륨을 높여요’의 막내 작가로 처음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라디오 듣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은 평범한 일상과 닿아 있으면서도 섬세한 통찰이 느껴졌어요”라며 “그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라디오 작가라는 걸 알게 됐고, 그때부터 라디오 작가를 꿈꿨죠”라고 말했다. 라디오에 대한 관심이 라디오 작가라는 꿈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 작가는 라디오 작가로 활동하며 기억에 남았던 사연을 소개했다. 발레 공연을 보고 싶어 하던 아이와 함께 2년간 돈을 저금해 공연을 예매했지만, 공연 시간을 착각해 결국 공연을 보지 못했다던 한 엄마의 사연이었다. 사연이 방송된 후 시청자 상담실을 통해 이 작가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우연히 사연을 들은 유니버설 발레단의 엄재용 수석무용수가 사연 속 청취자를 공연에 초대하고 싶어 한다는 전화였다.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달된 티켓으로 사연 속의 아이와 엄마는 결국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고 이후 라디오에 감사 후기를 남겼다. 이 작가는 일화를 소개하며 “작은 기적 같지 않나요?”라고 미소지었다. 이 작가는 이렇듯 누군가의 일상에 특별함을 전해줬던 순간이 가장 큰 보람을 느낀 때라고 말했다.

이 작가는 라디오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접하며 일상의 중요함을 깨닫게 됐다. 이 작가는 이 작가는 “라디오 작가로서 활동하며 가장 오랫동안, 열심히 다룬 것은 바로 사람들의 일상이었어요”라며 “개인이 할 수 있는 경험에는 한계가 있지만 작가로 일하며 사람들이 겪은 수많은 일상을 자세하게 실시간으로 공유받을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라디오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접하며 제 나잇대에선 알 수 없는 어르신들의 생각을 상상하거나 제가 이미 오래전에 잊은 학창시절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었죠”라고 덧붙였다.

일상을 공유한다는 라디오의 특성 덕분에 이 작가는 라디오 애청자와 실제로 친구가 되기도 했다. 이 작가는 “라디오를 통해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게 된 덕분인 것 같아요”라며 “지금도 가끔씩 연락하며 지내죠”라고 말했다.

지금은 라디오를 떠나 칠십이초에서 일하고 있지만, 이 작가는 라디오를 자신의 ‘마음의 고향’이라 칭하며 “언젠가 다시 라디오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라디오를 향한 애정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라디오는 라디오만의 정체성을 잃은 것 같다는 아쉬움을 표했다. 이 작가는 “라디오가 텔레비전 방송처럼 화려해지며 라디오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럴수록 좋은 음악과 이야기에 집중하며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어요”라는 바람을 전했다.

 

평범하고 특별한 우리의 일상, 공감을 이끌어내다
이 작가는 현재 칠십이초에서 기획과 대본을 맡고 있다. 칠십이초에서 이 작가가 집필한 두 여자, 바나나 액츄얼리, 오구실, 까마귀 상가 등의 작품은 대중에게 많은 공감과 사랑을 받았다.

이 작가는 라디오 작가로 일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현재의 직장인 칠십이초를 만났다. 영상 분야에 별다른 관심이 없던 이 작가가 칠십이초에서 일하기로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다. 소규모의 팀으로 대본을 쓰던 라디오 작가 때와는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작품을 만들어 내는 칠십이초의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낯섦은 곧 색다른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이 작가는 “밤새워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품을 촬영하고, 함께 어울리며 일하는 분위기가 재밌었어요”라며 칠십이초에 들어가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평범한 30대 여성의 일상을 그린 오구실은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와 조용한 내레이션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바나나 액츄얼리 또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사랑 이야기로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평범한 일상 이야기가 대부분인 이 작가의 작품들은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가 돋보인다. 이 작가는 “라디오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했던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드라마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라며 “라디오 작가로의 활동이 제겐 소중한 양분이 된 거죠”라고 말했다. 이어 본인의 작품이 사랑받은 이유에 대해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특별해 보이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익숙한 일상 이야기가 담긴 이 작가의 작품에는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일상도 함께 녹아 있다. 평소 하고 싶었던 말들이나 느낀 점들을 대사에 싣거나 친구나 동생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에피소드가 탄생하기도 한다. 이 작가는 “제가 겪은 경험을 그대로 쓰기보다는 후회되던 일의 결과를 바꿔서 글을 쓴 적도 있고, 해보고 싶었던 일을 상상해서 쓰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이 작가의 작품에서도 드러나듯, 이 작가에게 평범한 일상은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이 작가는 “글을 쓸 때 ‘우리의 일상은 얼마나 특별한가’를 항상 생각해요”라며 “우리의 일상 속에는 어느 영화 속 명대사만큼이나 특별한 말 한마디도 있고 드라마 속 멋진 연애만큼 대단한 사랑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직장, 연애 등 사소하고 일상적인 내용들 덕분에 이 작가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다. 이 작가는 “여행을 간 곳에서 사람들이 오구실과 바나나 액츄얼리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어요”라며 “사람들이 제가 쓴 작품에 공감하고 자신의 일상과 비교하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죠”라고 말했다. 그녀는 앞으로도 본인의 작품이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며 감정을 공유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공감을 통해 세상을 색다르게 바라보다
이 작가는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로 ‘공감하는 태도’를 꼽았다. 이러한 가치관은 이 작가가 작년까지 KBS방송아카데미에서 강사로 일했던 경험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 작가는 강사로 활동하며 수강생들에게 글 쓰는 법보다는 주로 기획과 관련된 내용을 가르쳤다. 글을 쓰는 능력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글은 기술이라 자신의 가치관이 확실하다면 누구나 잘 쓸 수 있어요”라며 “작가에게 필요한 건 글 쓰는 기술보다는 세상을 보는 눈이에요”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작가는 “사회를 보면서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의 강의를 했죠”라고 설명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중요시하는 이 작가는 평소에도 다양한 대상에 공감하고 감정이입하며 독특한 시각으로 대사를 전하곤 한다. 오구실 시즌2의 다섯 번째 에피소드에선 주인공이 아픈 장면을 ‘나 힘든 거 알아주는 건 몸 밖에 없어요. 나 쉬라고 꼼짝을 않죠’라는 내레이션을 통해 표현했다. 바쁜 와중에 몸이 아픈 것을 오히려 몸이 아픈 덕분에 쉴 수 있게 됐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 작가는 “‘차갑다’라는 표현은 사람에게는 칭찬이 아니지만, 냉장고의 입장에선 차가운 게 당연한 거잖아요”라며 “이런 사소한 생각들을 메모해두고, 기억하는 게 독특한 시각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이 작가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게 공감하며 다정해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녀는 “말투나 표정에서의 다정함이 아니라 공감력을 말하는 거예요”라며 “동물을 포함해서 다양한 대상에게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며 공감하려는 노력이 다정함인 거죠”라고 말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이러한 그녀의 바람처럼 대중들에게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작가는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전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드라마는 누군가가 이해하지 못했던 상황을 설명해 줄 수도 있고 몰랐던 삶의 이면을 전해줄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작가는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써나가고 싶어요”라며 “영상이나 드라마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을 작품에 많이 다루고 싶어요”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어쩌면 독서실에서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를 듣거나, 집 가는 지하철에서 3분짜리 짧은 웹 드라마를 봤던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작가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는 분명 특별한 순간이 있을 거예요”라며 “그 평범함 속의 특별함을 찾아내려는 노력도 중요해요”라고 말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또 다른 일상을,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찾을 수 있도록, 이 작가는 늘 평범하고 특별한 선물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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